한국 현대소설

은희경 단편소설 『타인에게 말걸기』

언덕에서 2024. 7. 17. 07:34

 

 

은희경 단편소설 『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殷熙耕. 1959~)의 단편소설로 1997년 발표된 단편집 <타인에게 말걸기>의 표제작이기도 하다.

 작가는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상투성', 그로 인해 초래되는 진정한 인간적 소통의 단절"이라고 한다. 그녀를 따라 다니는 또 하나의 평은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이나 인간에 대해 환상을 깨고 싶어한다. 그녀에 의하면 ‘'사랑의 가장 커다란 병균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다. 그녀는 사랑에 관한 이 치명적인 환상을 없애기 위해 사랑을 상대로 위악적(僞惡的)인 실험을 벌이고 있다.

 작중 직장 산악회에서 만난 여자는 타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소외되는 부류이고 남자는 세상의 현실법칙을 알고서 나름대로 앰프를 바꾸듯 직장을 바꾸거나 스포츠 센터에서 수영을 하며 혼자 사는 법을 터득한 사람이다. 이 작품은 단조로움과 타인의 무관심을 바라는 남자와 너무도 타인에게 말을 걸고 싶어 삶을 망가뜨리고 마는 여자의 만남이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코로나 이후 혼자 살기가 보편화되었지만 이 작품이 발표될 1997년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음을 감안할 때 작가의 예지력이 놀랍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남자인 ‘나’와 그녀가 있다. '나'는 타인에게 신경 쓰는 것도 타인이 자신에게 신경 써주는 것도 원치 않는다. 단지 일상의 단조로움을 원할 뿐이다. 그에 반해 '그녀'는 상대방의 이름을 자기만의 언어로 부르며, 타인을 대하는 의사소통이 전혀 다르다. 그러면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항상 갈증을 느끼며 그와 동시에 타인에 대한 불안감과 혼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귀찮은 타인에 불과할 뿐이다. 그저 그녀가 상처(중절수술, 어머니의 죽음 등)를 받을 때마다 '나'에게 연락을 해서 도움을 청할 뿐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만 나는 전화를 받고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끊어 버린다. 그리고 난 후, '나'는 '그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처음으로 타인에게 신경을 쓰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지'하며 다시 단조로운 생활로 돌아간다.

 

 이 작품은 단조로움과 타인의 무관심을 바라는 남자와 너무도 타인에게 말을 걸고 싶어 삶을 망가뜨리고 마는 여자의 만남이 참으로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나’라는 화자가 직장 산악회에서 만난 여자는 타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소외되는 부류이고 남자는 세상의 현실법칙을 알고서 나름대로 앰프를 바꾸듯 직장을 바꾸거나 스포츠 센터에서 수영을 하며 혼자 사는 법을 터득한 사람이다.

 작가는 극단적인 두 부류의 태도를 대변시켜 남녀를 연민에 가득찬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차라리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냉정함이 가장 편하다는 여자는 '어쩜 그렇게 냉정할 수 있는지' 반문하고 남자는 여전히 냉정함을 유지한 체 나는 단조로움을 원한다고 독백한다. 한국인의 특징으로 불리는 타인에 대한 애정없는 지나친 관심은 피곤한 일상의 사방에 있는 것이고 남자는 어떻게 하든 이런 시선을 피하고자 한다.

 여자는 자신의 나약함을 채워줄 존재를 찾아 헤매지만 지나친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원치 않는 임신이나 뺨에 난 흉터 같은 것이다. 주인공 남자처럼 늘 살수도 없고, 여자처럼 살아서는 더더욱 안되는 이 피곤한 삶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안 없는 현실의 냉혹한 사실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단편소설「타인에게 말 걸기」는 “등을 보인 자에게 아예 말 걸기를 포기하는” 화자 ‘나’와 타인을 부를 때 다른 사람들이 하듯 이름을 부르는 대신 “제멋대로 제가 지어낸 별명이라든지 저만 아는 호칭”을 사용하는 ‘그녀’의 이야기이다. 두 인물의 소통 방식은 극적으로 다르지만, 그것이 그들을 고독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타인의 반응에는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그녀’와 그에 대한 대답으로 냉소와 침묵만을 내놓는 ‘나’, 그들의 단절과 소통의 불능은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타인을 만난다. 그 속에서 그들과 대화를 하며 나름의 유대관계를 맺어가게 된다. 타인이 친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쉬운관계가 어떤 사람에게는 아픔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가 아닌 타인과 관계를 맺어간다는건 어려운 일이다.

 이 소설에서 어떤 이는 계속 타인에게 말을 걸려 하고, 또 다른 이는 이러한 타인에게 말 거는 것, 아니 타인으로부터 말이 걸려오는 것까지도 귀찮고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다. 단편소설 「타인에게 말걸기」는 이러한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어 가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불행을 향해 뛰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