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단편소설 『어린 벗에게』
이광수 단편소설 『어린 벗에게』
이광수(李光洙, 1892∼1950)가 지은 단편소설로 1917년 [청춘(靑春)]지 9∼11호에 게재되었다. 이광수의 초기 작품인 <윤광호(尹光浩)>나 <소년의 비애>가 그렇듯이 「어린 벗에게」 도 작가의 신변의 일을 허구화한 내용이다. 작중의 김일련이라는 여성은 신성모(申性模)를 여성화한 것이라고 이광수는 어느 신변기에서 밝힌 바 있다. 1913년 상해에서 망명 청년들(홍명희ㆍ문일평ㆍ조용은ㆍ송상순)과 같이 다닐 때 감기에 걸린 이광수를 신성모가 지극히 정성을 다하여 간호한 사실이 있다. 이 우정을 소설화한 단편소설이 「어린 벗에게」라고 한다.
소설 문장이라기보다는 아직도 관념적인 논설투의 이 소설은 자유연애와 개성의 해방을 주장하고 민족주의 계몽에 대하여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이광수의 주장은 이후 그의 전 작품에 걸쳐 연속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멀리 상해에서 지독한 감기에 걸려 닷새째 앓고 있던 나는 뜻밖에 이웃에 살고 있다는 중국인 처녀의 지극한 간호를 받아 완쾌되었다. 병이 낫고 몸이 회복된 나는 발해를 건널 양으로 떠나기 전 그동안 간호해 준 이웃 중국인 처녀 집을 찾았다. 그러나 이웃에는 그런 처녀가 살고 있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책상 서랍에서 ‘김일련’이라는 서명이 적힌 편지를 발견하였다. ‘그녀가 김일련이었구나’ 하고 나는 새삼스레 그녀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김일련은 내가 일본에서 와세다 대학을 다닐 때 사귄 친구 김일홍의 누이였다. 당시 동경의 모 여학교에 다니고 있던 그녀에게 나는 사랑을 호소하는 편지를 썼다가 고스란히 되돌려 받은 적이 있었다. 그 후 실의에 찬 나는 정처 없이 방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거절 이유는 이미 결혼을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나는 해삼위(海蔘威)로 가는 도중 배가 난파되었을 때 같은 배에 탄 김일련을 구조하였다. 그녀는 그동안 어느 시인과 열렬한 사랑을 주고받다가 그가 죽은 뒤에 백림(伯林)으로 유학을 가던 길에 조난을 당한 것이었다.
‘우리’는 장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하지 못한 채 다만 차에 실려 정처 없이 갈 뿐이었다.
사랑하는 벗이여!
나의 사랑이란 시련의 아픔을 친구에게 말함이란 어떤 것인가? (중략)
사람이란 일생에 얻은 모든 소득과 경험과 기억과 역사를 아끼고 아끼며 지녀오다가 무덤에 들어가는 날, 무덤 해관(海關)에서 말끔 빼앗기고 세상에 나올 때에 발가벗고 온 모양으로 세상을 떠날 때에도 발가벗기어 쫓겨나는 것이로소이다.
그대가 만일 평생 내 머리를 짚어 주고 내 손을 잡아 준다면 나는 즐겨 일생을 병으로 지내리이다.
나는 조선인이로소이다. 사랑이란 말은 듣고 맛은 못 본 조선인이로소이다. 조선에 어찌 남녀가 없사오리이까마는 조선 남녀는 아직 사랑으로 만나본 일이 없나이다.
우리나라 신문학 초창기 장편 소설 시발점의 모태를 이룬 그의 다작 작품 중 하나로 《청춘》지에 발표하였으며, 자신의 유학 시절 주인공 김일련과 애절한 사랑을 통해 친구에게 아픔을 토로하는 갈등과 방황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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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어린 벗에게」는 기혼남자인 ‘나’의 사랑을 친구에게 고백하는 서간체 형식으로, 춘원 이광수의 동경 유학 시절의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나’의 고독과 이제까지 비밀로 숨겨 두었던 중국인 여자와의 애정 문제를 친구에게 고백하는 서간체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문장에 있어서는 아직 신소설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그 묘사적 문체와 애정 문제의 대담한 표출은 근대 소설적인 성격에 접근하고 있다.
이광수 문학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그의 이중적 면모를 볼 수 있다. 우선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가 친일적인 매국 행위를 하는 작가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이것은 그가 지녔던 지나친 계몽성의 인식이 근대화된 서구 문명을 잘못 이끄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하며, 조선에 있어서의 유일한 엘리트라는 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역사의식의 결여가 그것이다. <민족 개조론>을 통해 변절하는 과정은 문학인으로서의 이중적인 면모이다. 따라서 이광수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 이 두 가지의 큰 개인적 면모를 위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신성모 (申性模.1891∼1960) : 일제강점기 때, 대동청년단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영국 상선회사에서 선장으로 일하다가 해방 이후, 국방부장관, 국무총리서리 등을 역임하였으나 거창양민학살 문제로 사직한 정치인 ·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