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 장편소설 『랑제 공작부인(Antoinette de Langeais)』
발자크 장편소설 『랑제 공작부인(Antoinette de Langeais)』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 (Honore de Balzac.1799∼1850)의 장편소설 1883년 발표되었다. ‘파리 생활 정경(情景)’에 속하고, <페라구스(Ferragus)>(1833) <금빛 눈의 아가씨>(1834)와 함께 <13인조(十三人組) 이야기(또는 13인당)>를 구성하고 있다. 작자 자신과 가스트리 공작부인과의 연애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인간극’이란 발자크가 자신의 작품 총서에 붙인 제목이다. 1839년경, 그는 그동안 산발적으로 발표해온 작품에 하나의 체계를 부여하면서, 정리하고 분류해 재편성한다. 그리고 그 체계에 맞춰 새로운 작품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인간극’은 ‘풍속 연구’ ‘철학 연구’ ‘분석 연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풍속 연구’에 속하는 일군의 사회적 작품이야말로 소설가이자 철학자 발자크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라 평가받고 있다.
‘풍속 연구’에서도 ‘파리 생활’ 부문을 연구할 때 반드시 꼽히는 소설 중 하나가 바로 <13인당 이야기>다. 이 작품에는 <페라귀스> 「랑제 공작부인」 <황금 눈의 여인> 등 세 편이 실려 있다. 세 편 모두 파리를 배경으로 13인당의 구성원들이 겪은 사랑과 복수에 대한 소설이다. '13인당'은 제정시대 상류층 남자들로 구성된 비밀결사 조직이다. 조직원들은 법 위에 존재하는 권력자로 때로는 범죄도 마다하지 않는다. 발자크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예수교, 프리메이슨단, 수도회 등 온갖 종류의 비밀결사가 난무했다. 그는 그러한 당시 사회 현실을 빌려, 19세기 초 파리의 모습을 생생히 되살려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랑제 공작부인은 귀족 계급의 특징을 지닌 여인이다. 그녀의 태도에는 왕정복고 시대의 보편적인 정신이 담겨 있다. 반면 몽리보 장군은 혁명의 산물이다. 그는 사교계의 남자들과 달리 전쟁터를 누빈 군인이며, 목표를 위해 목숨까지 거는 과감한 인물이다. 태생적으로 지닌 차이 때문에 그들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몽리보에게 사랑이란 정복을 위한 전쟁이며, 오로지 육체적 결합만이 사랑의 증거가 될 수 있다. 공작부인에게 그것은 저속한 욕망에 불과하며, 그녀는 육체적 정절을 지키면서 긴장을 유지하는 상태를 즐기고자 한다.
두 인물의 생각 차이는 종교와 정치 논쟁에서도 드러난다. 공작부인은 혁명을 부정하면서 정치에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다. 반면, 몽리보는 혁명 정신을 존중하지 않는 귀족들의 오류를 비난한다. 랑제 공작부인과 몽리보 장군은 각각 당시 프랑스에서 충돌하던 두 계급과 사상을 상징하는 듯하다.
몽리보 장군의 사랑을 농락하던 랑제 공작부인은 장군이 떠난 뒤에 비로소 자기의 마음을 알고, 그 죄를 참회하여 고도(孤島)의 수도원에 은거한다. 13인조의 친구들과 같이 몽리보 장군이 그녀를 탈취하러 왔을 때는 랑제 공작부인은 이미 시체가 되어 있었다.
발자크는 짙은 커피를 마시면서 잠과 싸우면서 하루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오직 집필에 전념하는 생활을 수십 일씩 계속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화로 남아 있다. 이때 그의 야심은 ‘역사의 이면’을 쓰는 것이었던 만큼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을 묘사하는 데도 극히 충실하고 정확했다. 정력적인 것은 창작생활뿐 아니라, 프랑스 국내를 널리 여행하여 그의 발자취는 전 유럽에 미쳤다. 또 왕당파의 정견을 품고 있었던 그는, 국회의원으로 입후보한 적이 두 번, 잡지 경영도 두 번, 그리고 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될 것을 열망하였고, 또 사르디니아에 은광을 찾기도 했으나, 이런 사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한편 그의 애정생활을 보면, 무명시대에 그를 지도 격려한 베르니(Berny) 부인은 그의 최초의 애인이었고, 1832년 이래 18년 동안이나 서한을 교환하던 러시아령 우크라이나의 대지주의 부인 한스카(Hanska)도 있었다. 폴란드 귀족 출신인 이 부인에게 보낸 그의 모든 편지는 오늘날 <이국의 여인에게>라는 제목하에 3권의 두꺼운 서한집으로 남아있는데, 이것은 그의 전기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렇게 소원하던 사랑이었건만 한스카 부인과의 결혼과 그의 죽음과의 사이에는 겨우 3개월의 짧은 시일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1850년 5월에 결혼한 그는 그해 8월 18일 파리의 호화롭게 꾸민 신저택에서 오랜 세월 과로한 것이 원인이 되어 쓰러진 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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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랑제 공작부인과 몽리보 장군이 맞는 결말은 발자크가 귀족 계급과 혁명 계급을 어떻게 여겼는지 보여주는 셈이다. <13인당 이야기> 세 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소설은 다름아닌 「랑제 공작부인」이다. 사랑, 협박, 납치, 모험 등 극적인 요소가 가득한 내용 덕에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후 발자크는 다시 한번 사랑의 실패에 대한 소설 <도끼에 손대지 마시오>를 썼다. 같은 주제를 여러 번 다루면서 개인적인 사랑의 실패담은 귀족 계급을 향한 비판으로 변했다.
「랑제 공작부인」은 발자크의 개인사가 반영된 소설이다. 파리 사교계에 입성한 발자크는 카스트리 후작부인에게 열렬히 구애했으나, 후작부인은 끝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일로 상처받은 그는 <시골 의사>와 <익살스러운 이야기>에서 거짓과 교태로 남자를 농락하는 여인을 등장시켰다. 이후 발자크는 다시 한번 사랑의 실패에 대한 소설 <도끼에 손대지 마시오>를 썼다. 같은 주제를 여러 번 다루면서 개인적인 사랑의 실패담은 귀족 계급을 향한 비판으로 변했다. <도끼에 손대지 마시오>였던 이 소설의 제목을 「랑제 공작부인」으로 바꾼 것 역시 그런 면에서 상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