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단편소설 『학(鶴)』
황순원 단편소설 『학(鶴)』
황순원(黃順元 1915∼2000)의 단편소설로 1953년 [신천지]지에 발표되었다. 『학』은 1953년 6ㆍ25 전쟁이 막 휴전으로 치닫던 시기에 쓰인 작품으로 1956년 [중앙문화사]에서 간행된 단편집의 표제작이다. 단짝으로 같이 자란 두 친구가 6ㆍ25라는 민족적 비극에 의해서 서로 반대편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결코 변하지 않는 인간미가 두 사람의 동질성을 회복시켜 준다는 내용이다.
황순원 특유의 서정적 감각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 6ㆍ25라는 전쟁의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이념의 편에 서게 된 성삼과 덕재가 이념을 뛰어넘어 우정을 확인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즉, 이데올로기에 따라 적으로 맞서게 된 두 젊은이의 갈등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학’을 통해 동질성의 회복은 물론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황순원의 휴머니즘이 짙게 나타난 소설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마을에서 단짝 동무로 지냈던 성삼이와 덕재는 6ㆍ25가 나면서 이념을 달리하는 적대 관계로 만나게 된다. 치안대원이 된 성삼이는 덕재가 체포되어 온 것을 보고, 청단까지 호송할 것을 자청하여 데리고 나선다. 호송 도중 유년시절에 호박잎담배를 나눠 피던 생각과 혹부리 할아버지네 밤을 서리하다 들켜 혼이 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내적 갈등을 느낀다.
농민동맹 부위원장까지 지낸 덕재에 대해 심한 적대감을 품기도 했으나, 대화를 하면서 점차 감정이 누그러지고 그의 진실을 알게 된다. 덕재는 아무런 이념에의 동조 없이 빈농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용당했을 뿐, 실은 땅밖에 모르는 순박한 농민이었던 것이다.
덕재는 아버지가 병석에 있고, 농사에 대한 고집스러운 애착으로 인해 피하지 않고 남았음을 이야기한다. 성삼이는 자신이 피난 가던 때를 회상하면서 농사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피난하기를 끝까지 거부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덕재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증오의 마음이 점차 우정으로 바뀌면서 고갯마루를 넘는다.
성삼이는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전처럼 살고 있는 학 무리를 발견하고 옛일을 회상한다. 어린 시절, 학을 잡아 얽어매 놓고 괴롭히다가 사냥꾼이 학을 잡으러 왔다는 소문을 듣고 놀라서 학 발목의 올가미를 풀어 준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에는 제대로 날지 못하다가 자유로워진 학이 푸른 하늘로 날아가던 추억이다.
성삼이는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준다. 덕재는 성삼이가 자기를 쏘아 죽이려나 보다고 생각하나, ‘어이, 왜 맹추 같이 게 섰는 게야?’ 하는 성삼이의 재촉에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사이로 도망친다. 때마침 단정학(丹頂鶴) 두세 마리가 가을 하늘을 날고 있었다.
소설문학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주력할 경우 자칫하면 역사적 차원에 대한 관심의 결여라는 문제점이 동반될 수 있지만 황순원의 문학은 이러한 위험도 잘 극복하고 있다. 그의 여러 장편소설들을 보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살려놓으면서 일제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가 제창되는 시기에까지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의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한 마을에서 소꿉친구로 자라는 두 인물, 성삼과 덕재가 좌ㆍ우익의 대립으로 말미암아 갈등을 일으키나, 유년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화해를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옛 친구 사이인 성삼과 덕재는 6ㆍ25 전쟁에 의해 남쪽의 치안 대원과 북쪽의 농민 동맹 부위원장이라는 적대 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성삼과 덕재는 분열 이전의 공동생활체의 경험을 회고하여 분단의 비극을 감싸는 인간애의 정신을 회복한다. 즉 혹부리 할아버지의 고함 소리, 밤나무, 꼬맹이 등 어렸을 때의 삶을 통하여 인간적 애정을 확인하고 좌ㆍ우로 분열된 정신적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분단 극복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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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나타나는 소재는 고향의 밤나무, 담배, 고갯길, 아버지, 꼬맹이, 학 등으로 향토성이 짙은 것들이다. 이 소재들의 의미는 이념을 초월하는 향토, 농사, 혈육 등에 대한 깊은 정이다. 더구나 그러한 소재와 연결되는 사건들이 시간적 순서를 뛰어넘어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학’은 주제를 암시하는 매개물로서 절정 부분에 나타난다. 소년들이 학을 풀어주었던 과거의 에피소드는 이념에 왜곡된 인간을 구원하는 힘은 인간의 순수한 마음밖에 없다는 작가 의식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성삼은 학 사냥을 하자는 제의로 덕재를 놓아주겠다는 암시를 표출하고 있는데, 여기서 학은 ‘흰옷을 입은 사람들’로 비유되는 우리 민족을 나타내는 것이고, 학을 놓아주는 것은 결국 우리 민족 고유의 심성을 표출한 것으로, 이 역시 이념을 초월한 인간 본연의 심성인 우정의 회복을 상징하고 있다. 즉, ‘학’은 우정 회복의 매개체가 되어 손상된 우정을 회복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