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 단편소설 『배따라기』
김동인 단편소설 『배따라기』
김동인(金東仁. 1900∼1951)의 단편소설로 1921년 [창조] 9호에 게재되었다. 작가 스스로가 이 작품부터가 본격적인 단편이라고 주장한 작품으로, 전설에서 취재한 대표적인 낭만적인 유미주의 계열의 소설이다. ‘배따라기’란 ‘배 떠나기’란 춤의 일종이다.
애조 띤 서정이 작품 전편에 넘쳐흐르고 단편으로서의 짜임새가 비로소 완벽한 경지에 이른 김동인의 초기 자연주의의 대표작이다. 작가 자신도 이 단편이 “여(余)에게 있어서 최초의 단편소설(형태로든 양으로든)인 동시에 조선에 있어서 조선글, 조선말로 된 최초의 단편소설일 것이다”라고 자부하였다.
오해가 빚은 형제간 관계 파탄의 이야기로, 양순하고 다정다감한 아우와 붙임성 있으면서도 성미 급한 형수, 선량하나 난폭한 형, 이들이 오해로 인해 불행을 맞이한다. 이러한 내용 전개 속에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과 끝없는 회한, 거기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서정적 비애가 함께 서린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좋은 날씨다.
좋은 날씨라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우리 '사람'으로서는 감히 접근 못 할 위엄을 가지고, 높이서 우리 조그만 '사람'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보는, 그런 교만한 하늘은 아니고, 가장 우리 '사람'의 이해자인 듯이 낮추 뭉글뭉글 엉기는 분홍빛 구름으로서 우리와 서로 손목을 잡자는 그런 하늘이다. 사랑의 하늘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나'는 대동강으로 봄 경치를 구경 나갔다가 '영유 배따라기'를 부르는 '그'를 만난다. 이제부터 나는 그의 기구한 사연을 듣게 된다.
그는 영유 고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어촌에서 살았다. 그의 부모는 모두 그가 어렸을 때 죽었고, 그는 곁집에 사는 그의 아우 부처와 자기 부처뿐이었다. 그들 형제가 마을에서 제일 고기잡이를 잘하였고, 배따라기도 그들 마을에서 그들이 제일 잘 불렀다. 말하자면 그들 형제가 그 마을에서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는 미모가 매우 절색인 데다가 성격도 명랑하고, 천진스러우며 쾌활해서 아무에게나 말 잘하고 애교를 부렸기 때문에 그는 아내에게 샘을 많이 하였다. 그는 가끔 그의 아내를 발길로 차고 때리기까지 했다. 싸움할 때는 옆에 사는 아우가 와서 말리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그는 아우까지 때렸다. 그가 아우에게 그렇게 구는 데는 그의 아내가 아우를 매우 친절히 대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가 아내를 주려고 거울을 사서 돌아오자 방 안에서는 기이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쥐를 잡는다고 그의 아내와 아우가 옷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그의 아우는 수건이 벗겨져 목 뒤로 늘어지고, 저고리 고름이 모두 풀어져 있으며, 그의 아내는 머리채가 모두 뒤로 늘어지고 치마가 배꼽 아래로 늘어져 있다가 그를 보자 매우 당황해하였다. 오해한 그는 자기 아내를 때려 그녀가 바다에 빠져 자살하게 하고 그의 아우는 고향을 떠나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의 오해에서 생긴 잘못을 뉘우치고 아우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돌게 된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그가 탄 배가 파선하여 정신을 잃고 물 위에 떠돌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향을 떠났던 아우가 그를 간호하고 있었다. 이때 동생은 형에게 '운명'임을 말하고 떠난다. 그리고는 다시 아우를 만나지 못한 채 그는 유랑 생활을 계속한다.
모란봉과 기자묘에 다시 봄이 이르러서, 작년에 그가 깔고 앉아서 부러졌던 풀들도 다시 곧게 대가 나서 자줏빛 꽃이 피려 한다. 끝없는 뉘우침을 다만 한낱 '배따라기'로 하소연하는 그는, 이 조그만 모란봉과 기자묘에서 다시 볼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남기고 간 '배따라기'만 추억하는 듯이 모든 잎들이 속삭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1921년 [창조] 9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배따라기』를 김동인은 스스로 매우 뜻깊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젊은 작가로서는 그 당시까지에 있어서의 한국의 단편 소설들과 비교해 볼 때, 예술적 가치가 뛰어났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에는 형제간의 우애와 형수와 아우 사이의 우애를 두루 다루고 있다. 작품의 시작에서 작자는 모란봉과 대동강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는 봄의 풍경에 취한 상태를 말하면서 '유토피아'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화자는 진시황을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로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작품의 주화와는 일단 구분되는 외화에 속한다. 그런데 외화의 주관적 시점은 실상 내화 또는 주화의 흐름을 간접적으로 제한하는 구실을 담당하는 듯이 보인다. 외화의 시점이 내화를 보여 주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내화는 배따라기의 노래를 매개로 하여 뱃사람의 어려움의 운명적인 측면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그런 다음에 노래의 주인공이자 내화의 주인공인 형을 만나서 오해로 인한 형제와 부부 사이의 비극적 종말을 가져온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일반적으로 액자소설이란 그 형식 자체가 외부의 이야기를 내부의 이야기로 전환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꾸민 소설을 말한다. 그리고 이로써 작품은 강도 있게 개연성을 확보하기 때문에 사실성을 획득하게 된다.『배따라기』가 갖는 개연성 역시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사실로 비추어 볼 때 이 작품은 최초의 개연성을 획득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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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사소한 오해로 불행한 운명에 처한 어느 형제의 삶을 인과론적 원리에 근거하여 사건을 전개하여 동시대 계몽주의 문학의 합리성과 대비되고 있다. 작중 등장인물에 관한 심리 묘사 역시 뛰어난 작품이다. 운명 앞에선 인간의 무력함과 끝없는 회한, 바다를 배경으로 한 서정적 비애감이 소설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서도 잡가의 하나인 '영유 배따라기'를 제재로 하여 한 많은 인물의 내력을 엮어 놓았다.
‘배따라기’는 '배떠나기'라는 말에서 유래된 서도 잡가의 하나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배따라기'는 '영유 배따라기'로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천 후토 일월성신 하나님 전 비나이다./ 실낱같은 우리 목숨 살려 달라 비나이다./ 에 - 야 어그야지야. (하략) "라고 시작된다. 이 작품의 핵심 구절은 "형님, 거저 다 운명이외다." 하는 아우의 말이다. 작자가 바로 이 작품을 쓰게 된 목적도 운명의 힘을 거역하지 못하는 가냘픈 '인간의 비애와 한'을 그리려는데 있다.
이 작품은 김동인 최초의 한글 표기 단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조선글, 조선말로 된 최초의 단편소설’이라고 스스로 규정하고 있다. 그 구체적 요인은 곧 『배따라기』가 가지고 있는 소설의 내적 질서이다.
이 소설의 경향은 탐미주의적이며, 또 낭만주의적 색채가 짙은 김동인의 실험정신에 근거한 미적 추구가 돋보인다. ‘영유’라는 어촌은 애환이 서린 비극적 공간으로 비극을 그리기 위한 하나의 배경이기에 앞서 비극의 미학을 창출하는 바탕이 된다. 그리고 배따라기의 구슬픈 가락과 함께 비극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작품은 주인공인 ‘그’의 아내와 아우에게 오해받을 만한 많은 자료를 제공하여 구성의 진행에 충분한 개연성도 확보하고 있어 사실성의 강도를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