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정직한 나무꾼 이야기

언덕에서 2013. 5. 23. 06:00

 

 

 

 

정직한 나무꾼 이야기

 

 

 

 

정직했기 때문에 산신령에게 금도끼와 은도끼를 상으로 받은 나무꾼의 이야기는〈금도끼 은도끼 쇠도끼〉라고도 한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잘못하여 연못에 도끼를 빠뜨렸다. 기가 막혀 울고 있는데 연못 속에서 노인이 나타나 금도끼를 보여주며 그것이 나무꾼의 것인가를 물었다. 나무꾼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하자 이번에는 은도끼를 보여주며 물었다.

 나무꾼은 그것도 자기 것이 아니며 자기의 도끼는 쇠도끼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나무꾼의 정직을 칭찬하며 금도끼·은도끼·쇠도끼를 모두 주었다. 정직한 나무꾼의 이웃에 사는 욕심쟁이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금도끼와 은도끼를 받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산에서 나무를 하는 체하다가 자기의 쇠도끼를 일부러 연못에 빠뜨렸다.

 그러자 연못 속에서 노인이 금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욕심쟁이는 금도끼가 자기 것이라고 대답했다. 노인이 다시 은도끼를 들고 나타나자 그는 은도끼도 자기 것이라고 했다. 노인은 욕심쟁이의 대답에 화가 나서 금도끼·은도끼는커녕 욕심쟁이의 것인 쇠도끼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정직한 사람의 성공담과 정직하지 못한 사람의 실패담이 연결되어 있는 모방담 구조이다. 즉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의 성공을 시기하여 선한 사람의 성공 과정을 그대로 따라해 보지만, 악인의 의도적인 계산과 악한 품성이 드러나 오히려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정직한 나무꾼 이야기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중의 취향에 따라 변형되어 회자되었다.  1980년대 중반 내가 군복무 중일 때는 병영에서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로 바뀌었다. 당시 보컬밴드 '산울림'의 맏형이었던 김창완씨가 지은 ‘산 할아버지’라는 곡에다 패러디한 성적(性的)인 가사로 구전되었다.  산할아버지가 나무를 하다 실수하여 자신의 중요한 부위(性器)를 자르고 말았는데 잘린 부분이 연못에 빠지고 만 것이다.

 

 

 

산신령 : 금XX가 네 놈의 XX냐?

산할아버지 : 아닙니다.

 

산신령 : 은XX가 네 놈의 XX냐?

산할아버지 : 아닙니다. 요 놈의 XX는 시커먼...

 

 (하략)

 

이 노래가사 내용은 최근에 다시 변형되어 SNS 등에서 다음과 같이 떠돌고 있다.

 

산신령 : 금팬티가 네 팬티냐?

대변인 : 아닙니다.

 

산신령 : 은팬티가 네 팬티냐?

대변인 : 아닙니다.

 

산신령 : 동팬티가 네 팬티냐?

대변인 : 아닙니다.

 

산신령 : 그럼 당체 니 팬티는 어떤 팬티냐?

대변인 : 저는 노팬티입니다.

 

 

 

 

 

 <정직한 나무꾼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은 대체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아무리 탐나는 자리라 해도 감당할 능력이 되는지, 자질과 도덕성에는 문제가 없는지 스스로 체크하는 ‘자가(自家)청문회’를 거칠 필요가 있다. 나무꾼이 금도끼, 은도끼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고위 공직은 아무나 덥석 받아도 되는 공짜 선물이 아니다. 그를 택한 주군(主君)이 그를 과대평가했다하더라도 분수에 넘치는 큰 감투를 쓰게 되면 목이 부러질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했을 것이다. 

 그는 '후안무취(厚顔無恥)'라는 팬티를 금.은팬티 만큼 선호했음이 분명하다. 공직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런대로 잘 살 수 있었던 사람이 남세스러운 꼴을 당하고 자리까지 잃고 먼나라에 가서 구속될 처지에 몰렸다. 더욱이 그는 개인의 굴욕을 넘어 정부와 국격에까지 먹칠을 했다. 그는 ‘평판’도 ‘능력’의 일부분이라는 신문기사를 곰곰이 읽었어야 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