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소설

은희경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언덕에서 2013. 7. 10. 06:00

 

 

은희경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殷熙耕, 1959 ~ )의 장편소설로 1998년 [문학동네]에서 출판되었다. 은희경이 `사랑`이라는 흔하디 흔한 주제를 새로운 각도로 조명한 작품으로 세 명의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삼십 대 후반 대학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에 대한 환상을 파괴해 나간다.

 은희경식 사랑법은 그 사랑의 낭만성을 뒤엎어버리는 `순정의 아이러니’로서의 사랑이다. 정해진 규칙을 따라가는 사랑이 아니라 배신과 반칙이 횡행하는 규범 없는 사랑이다. 비극이 예정돼 있는 하나도 안 되고, 불안하고 부담스러운 둘도 안 되는, 애인이라면 셋이라야 족한 사랑이다. 자유분방한 사랑이며, 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획일화된 가치나 허위의식에 신랄한 냉소를 퍼붓는 사랑이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억압과 금기들에 의해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사랑이며, 그 억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사랑이다.

 소설의 제목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팝가수 드리프터스(The Drifters)의 노래에서 따왔다. 다른 남자들 품에서 즐겁게 춤추는 애인을 쳐다보며 부르는 노래다.

팝가수 드리프터스(The Drifters)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삼십대 후반의 이혼녀이자 대학교수인 강진희.

 "나는 삶이 내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열두 살에 성장을 멈췄다”라고 선언한 소녀 진희가 성장한 어른의 모습으로 재등장한다. 그녀는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유분방한 여자이다. 남자를 쉽게 잊는 냉정한 여자이며, 육 년 동안이나 같이 산 남편과 이혼 수속을 마치고 와서도 보충수업까지 하는 독한 여자이며, 사랑하면서도 헤어짐을 무릅쓰는 강한 여자이다.

 진희에게는 세 명의 남자가 있다. 첫 번째,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은 외모의 현석. 그는 대학교수로 미남이고 지적이지만 소심한 인물이며 그 소심함을 냉소로 위장하고 있다. 진희는 그와는 미래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는 관계이며 언제라도 원할 때에 자기의 감정을 철회할 수 있는 매력적인 관계로 설정한다.

 두 번째, 시사 주간지 사회부 기자인 세 살 연하의 유부남 종태. 여자를 감동시키지 못하면 자존심이 상하는 스타일의 인물로 "바람처럼 왔다가 방귀처럼 냄새만 남기고 아무 데서도 찾을 길 없이 허망하게 떠나버리는 일을 남자다운 일이라고 확신”하는 쾌활한 성격의 남자이다. 진희는 그를 자신과는 기호와 취향이 다르지만 편안한 상대로 여긴다.

 마지막으로, 전 남편 상현. 소설 속에서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으나, 진희가 그와의 재회를 위해 카페에서 기다리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인물이다.

 주인공 진희는 이 세 남자를 동시에 사랑한다. 사람보다는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세 명의 애인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운명적 사랑이나 무거운 순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사람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므로 애인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며, 그럼으로써 순정이니 운명적 사랑이니 하는 사랑에 대한 일체의 환상을 깨부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에 가장 커다란 병균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기 때문이다. `환상이 하나하나 깨지는 것이 바로 사랑이 완결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사람이란 모이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고, 어느 순간은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고, 어느 순간은 주위에 사람들이 북적대고 또 어느 순간 돌아보면 아무도 없기도 했다. 마치 약속된 주기를 지키지 않는 밀물과 썰물처럼. 그러므로 내가 셋에 대해 말하는 것은 셋을 맞추려고 애쓴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마음속에 셋 정도의 균형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무거운 짐을 처리할 때의 방식과 같다. 여러 개의 가방 안에 나눠 담으면 사랑도 덜 무거워진다. 그 가방을 들고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선 채로 잠깐 궁리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더 이상 그 가방 안의 내용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 가방을 그대로 두고 돌아와 버리면 그만이다. 한 개의 가방에 담았다가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지만 여러 개라면 상실에도 단계가 있고 고통에도 완충이 생겨날 것이다. /p11

 이 작품은 결혼에 실패한 여주인공이 선택한 파격적인 사랑 방식을 통해 사랑에 대한 일반적 통념을 가차 없이 뒤집고 있는 소설이다.

 애인이라면 적어도 세 명 정도는 갖고 있어야 언젠가 찾아올 배신 앞에서 초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진희는 대학 동문이면서 교수인 독신남 현석과 비밀리에 연애 중이며,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있는 유부남 종태와도 가까운 관계다. 그러나 현석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은 그녀를 고민에 빠뜨린다. 현석은 청혼을 하지만 진희는 자신이 정한 사랑 방식을 바꾸지 않고 현석과 이별하고 직장도 잃는다.

 

 

  누구나 마지막 춤 상대가 되기를 원한다.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마지막이 언제 오는지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음악이 언제 끊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지막 춤의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대와의 춤을 즐기는 것이 마지막 춤을 추는 방법이다. 마지막 춤을 추자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사랑은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고. P 273

 이 작품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출간한 해의 마지막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사랑과 섹스에 대한 파격적 시각으로 화제를 모았기 때문일 것이다. 30대 후반 지식인 여성이 독신으로 살면서 누리는 남성 편력, 감각적 문체로 드러내는 인생 단상, 장면 전환이 빠른 에피소드식 구성, 겉으론 강한 듯하지만 내적으로 연약한 주인공 성격 등이 강점이다. 첫사랑의 실패로 사랑을 불신하게 된 여인의 파격적 사랑방식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내용으로 신문에 연재할 당시 독자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들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