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화가 길진섭(吉鎭燮.1907∼1975)의 그림
월북화가 길진섭(吉鎭燮.1907∼1975)의 그림
길진섭(吉鎭燮.1907∼1975) 서양화가. 평양 출생. 3ㆍ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길선주 목사의 아들. 1932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민족사회의 서화협회전람회에 참가하였고, 1934년 이종우·장발·구본웅·김용준 등과 양화단체 목일회를 조직하고 동인작품전 활동을 시도하였으나, 일제식민지정책의 조선미술전람회를 외면한 일 등으로 탄압을 받다가 1938년에 와해되었다.
1940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을 때, 윤희순은 ‘현대적인 표현감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라고 평문에 썼다. 현존하는 그 시기의 작품인 <정물><소녀><원주 풍경> 등에서 그러한 특질과 세련성이 확인된다.
1946년 서울대학교가 개교될 때 미술학부 교수로 취임하였고, 미술계 움직임에도 적극 참여하여 조선조형예술동맹 부위원장, 조선미술동맹 서울지부 위원장 및 중앙위원장을 지내면서 미술계의 좌파를 이끌었다.
1948년 8월 해주에서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가 열릴 때에 남한의 미술계 대표로 밀입북하여 참가하고 나서 북한에 정착하였다. 그 뒤, 북한에서는 평양미술학교(뒤에 대학으로 승격)교원,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작품 활동은 정치적인 주제화들 외에 <옹진바다 전망>(1956) <종달새가 운다>(1957) <농촌의 모녀상><금강산 신계사 가는 길에>(1962) <바닷가 풍경>(1966) 등 풍경화와 인물화를 많이 그린 사실이 확인되어 있다.
【작품】<정물><소녀><원주 풍경><옹진바다 전망>(1956) <종달새가 운다>(1957) <농촌의 모녀상><금강산 신계사 가는 길에>(1962) <바닷가 풍경>(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