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철학서

위대한 성인의 진실한 자기고백 『고백록(告白錄.Confessiones)』

언덕에서 2013. 7. 11. 06:00

 

 

위대한 성인의 진실한 자기고백 『고백록(告白錄.Confessiones)』

 

이 고백록은 아프리카 히포의 주교로 있었던 아우구스티누스가 5세기 초에 완성한 책이다. 라틴어 confessiones으로 표현된다. 이 책에는 영혼을 신에게 거룩한 선물로 바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한 위대한 성인의 진실한 자기고백을 담고 있다. 그는 교부철학과 신플라톤주의를 통일하여 구제의 사상으로 집약시켰다. 그의 철학은 자기의 내면생활에서 신으로 향한 신 중심의 세계관을 구축했으며, 희랍적 인간중심주의를 부정하여 기독교의 철학을 성립시키는 가톨릭교회의 개념적 구성에 성공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기독교 사상의 커다란 원천이며, 그 후 오랜 기간에 걸쳐 유럽인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열렬한 철학적 탐구와 격렬한 육과 영의 도덕적 고투는 드디어 그로 하여금 심원한 종교적 각성을 갖게 하였다. 이 책은 언제나 개인의 영혼문제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 ‘인간의 내면이야말로 진리가 사는 집’이라고 하는 그의 고백을 담아내고 있다. 

 

 

고백록」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서전으로 397년에서 400년에 걸쳐 집필한 13권으로 된 저서이다.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위대하게 여기는 저술 중의 하나로, 1∼9권은 자서전으로 유년 시대의 회상ㆍ학업ㆍ독서ㆍ교유ㆍ마니교1의 입신과 이탈, 32세 때의 회심, 그 후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 등을 기록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앙이 없이 방탕했던 시기에서 마니교에 빠졌다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기까지의 참회 생활을 중심으로 엮어내었다. 비록 자서전이라고는 하지만 신학 체계가 매우 탁월한 작품으로, 자신에 대한 기록 10권과 성서에 대한 해석 3권 등 총 13권으로 되어 있다. 일부에서 후반의 3권, 즉 성서에 대한 해석 부분을 그의 생활 기록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백록>에서 제외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나머지 부분도 본론에서 벗어났다기보다 오히려 하느님을 보다 완전히 인식하고 더욱 사랑하고자 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가 46세 무렵에 완성한 자전적 작품이다. 이 책은 여러 시대에 걸쳐 매우 널리 읽혔으며 사본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래된 것은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탄생부터 히포 교회의 주교가 되기까지의 반생을 기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유소년시절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외적인 행보를 더듬어 올라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적인 마음의 궤적까지도 소상히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스스로의 외적, 내적 생활을 기술한 귀중한 사료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에 다가가기 위해 가장 먼저 참조해야 할 책이다.

『고백록』은 총 13권으로 되어 있다. 1∼9권은 자서전으로 유년 시대의 회상, 학업, 독서, 교유, 마니교의 입신과 이탈, 32세 때의 회심, 그 뒤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 등을 기록하였다. 이 자서전은 자기 죄를 통회하며 신의 사랑과 인도를 기구하고 찬미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참회록』 또는 『찬미가』라고도 한다.

 후반의 10∼13권은 신(神)에 대한 인식을 주제로 한 사색을 담고 있다. 여기 나오는 기억론이나 시간론은 현대철학에서도 언제나 돌이켜보는 중요한 이론으로,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아무도 내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물을 때 설명하려 하면, 나는 알지 못합니다.’(11권 14장)라는 구절은 유명하다. 11∼13권은 『구약성서』 창세기 1장의 해석으로서, 이는 신과 세계의 이원론을 주장하는 마니교와 대결하여, 그리스도교의 신관(神觀)을 명백히 밝히려는 도전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성녀 모니카

 

 이 책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고, 죄 사함을 받은 산 체험을 통하여 우주와 역사의 지배자인 신을 찬미함과 동시에 그리스도교와 마니교의 차이점을 밝히려는 의도에서 저술되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그가 ‘회심(回心)’하는 부분은 수도사의 시범적인 본보기로서 단순한 기록이 아닌 고도의 문학성을 지닌 작품으로 평가된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회개의 삶을 고백한 작품이지만, 단지 죄스러운 삶에 대한 고백만을 담았다기보다 작품 전편에는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정이 더 많이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고백록』이 단순한 참회만이 아니라 오히려 오묘한 섭리로 자신을 죄악의 비참함에서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는 영혼의 송가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고백록』에서는 참회와 죄에 대한 개념이 이전 시대와는 다르게 이해되었고, 하느님과 인간과의 인격적 관계가 특별히 강조되었다. 『고백록』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의 영적 발전의 역사를 통하여 받은 성총(聖寵)의 주(主)되는 신을 찬미할 목적으로 힙포(Hippo)의 주교 취임 5년 후인 400년에 저작한 전 13권의 저서이다. 라틴어로 내적 표현을 한 최초의 문헌인 이 명문은 저자의 깊은 인간성의 발로와 당시의 정신적 세계의 여러 주장을 가득 수록한 내용상의 매력과 아울러 그리스도교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 교부 중에서 최대 최고의 신학자ㆍ철학자. 힙포의 주교(主敎)인 아우구스티누스는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출생했다. 카르타고에서 수사학을 배우고, 학자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청춘의 정욕과 진리에 대한 사모의 두 갈림길에서 번민하다가 키케로의 글을 읽고 감동하여 마니교의 유물적이원론에서 아카데미아파의 회의론을 거쳐, 밀라노에서 플라톤주의의 저서를 탐독함으로써 드디어 영적 존재의 확증을 얻었다.

 그러다가 사교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와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에 의해 32세 때 극적으로 회심한 이래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목ㆍ저술ㆍ포교에 전념하였다. 특히 펠라기우스(Pelagius)나 도나티스트(Donatists)파 이단과의 논쟁은 저명하다.

 최초근대인이라고 일컬어지는 그의 생애를 통한 끊임없는 내적 편력과 심화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어라. 믿기 위해서 이해하라.’라는 신앙과 이성의 유기적 통일에 도달하고, 원죄론ㆍ예정설ㆍ그리스도론 등에 의거하여 가톨릭교회의 교의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고백록> 외에도 <아카데미아파(派) 반박론><독어집(獨語集)><신의 나라>는 그 밖의 수많은 설교ㆍ서간ㆍ성서 주석ㆍ논박서 등과 함께 그 우아한 문장과 강유(剛柔)를 겸한 사색 내용으로 모든 그리스도교 사상가의 관심을 모았으며, 라틴 문헌의 지보적 존재가 되고 있다. 

 

■옮긴이 최민순 : 천주교 사제. 1912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1975년 향년 64세로 선종했다. 신학생 시절부터 문재文才에 뛰어났던 그는 가톨릭 내 잡지와 신문에 글을 기고하면서 언론을 통한 선교에 힘썼다. 사제생활 중 20여 년을 신학교에서 후배를 양성한 영성신학자로서 글과 시를 쓰고, 영성 강론을 하여 한국 교회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지은 책으로 수필집 「생명의 곡」과 시집「님」,「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완덕의 길」,「영혼의 성」,「가르멜의 산길」,「어둔 밤」 외 다수가 있다.

  1. ■마니교 : 마니교는 3세기에 '빛의 사도' 또는 최고의 '빛을 비추는 자'로 알려진 예언자 마니(Mani : 210? ~ 276)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이원론적 종교운동에서 시작했다. 마니의 활동 초기에는 그리스도교, 조로아스터교, 불교의 여러 요소를 가미한 이단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拜火敎]에서 파생되고, 그 교리가 일관되고, 체계가 확실히 잡혀가며 고유한 종교로 자리잡았다.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는 오늘날의 이라크 남부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24세가 되던 해에 계시를 받아 대중들에게 설교를 시작했다. 마니는 자신이 아담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 붓다, 예수, 조로아스터로 이어져 내려온 예언자들의 마지막 계승자라고 생각했다. 또한 종교적 진리는 한 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 여겨 선교 초기부터 전세계를 개종시키고자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쳤다. [본문으로]
  2. ■성녀 모니카(Monica, 332년 - 387년)는 서방 교회의 4대 교회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이다. 로마 가톨릭과 성공회의 성인이다. 축일(기념일)은 8월 27일이다. 그녀의 이름은 어머니 또는 아내를 뜻하는 라틴어 파생단어이다. 회화에서는 종종 아우구스티노회수녀복을 입은 늙은 여성으로 묘사한다. 상징물은 아우구스티노회의 규율집과 십자가이며, 여성과 어머니의 수호 성녀이다. 모니카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 《고백록》에서 나온다. 아들인 아우구스티누스가 저술한 바에 따르면 모니카는 그리스도인 어머니의 귀감이 될 만한 여인이었다. 모니카는 오랫동안 남편 파트리키우스의 부도덕하고 난폭한 행실, 함께 사는 시어머니의 음주벽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기독교를 신봉하는 아내의 헌신으로 남편을 설득하여 마침내 세례를 받게 했다. 또한 그녀는 아들 아우구스티누스 때문에 언제나 노심초사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례를 받기는 했으나 예비신자에 어울리지 않는 방종한 삶을 살고 있었다. 아들의 방탕함이 심해지자 어머니 모니카는 스스로 포기하여 아들이 아직 개종할 때가 아니라고 여기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집에서 도망쳐 나와 로마와 밀라노를 여행했다. 모니카는 아들을 따라갔고 아우구스티누스가 밀라노의 주교암브로시우스를 만나 개종하게 되자 아들이 세례를 받는 자리에 있었다. 모니카는 아들이 세례받는 것을 본 뒤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로 가는 배를 타기 전 이탈리아 오스티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