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철학서

역사이자 詩, 신화가 된, 영혼의 書 『월든』

언덕에서 2013. 7. 2. 06:00

 

 

 

역사이자 詩, 신화가 된, 영혼의 書『월든』

 

 

 

미국 사회활동가 헨리 소로우(Henry David Thoreau.1817∼1862)의 저서로 1854년 발간되었다. 소로우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나 안정된 직업을 갖지 않고 측량 일이나 목수 일 같은 정직한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 책은 1845년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면서 소박하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2년간에 걸쳐 시도한 산물이다. 대자연의 예찬인 동시에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며,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구속받지 않으려는 한 자주적 인간의 독립 선언문이기도 하다.

 1852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 「월든」은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오늘날 19세기에 쓰인 가장 중요한 책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전 세계의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고 있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다석 유영모, 법정 스님 등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는 동시에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해 왔다. 

 「월든」에는 자연사상가 소로우의 주옥같은 에세이 18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저자의 호반생활에서의 자유롭게 여가를 누리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로우는 이 글들을 통해 노동과 여가에 대한 독창적인 생각을 밝히고, 되도록 단순하고 자족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자신의 실험적 생활을 보여준다. 또한 이 책에는 작은 동물들과의 교감,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숲과 호수의 소리·냄새·경치, 전선에 스치는 바람소리 등 월든 호반에서의 다양한 생활을 그려내면서 단순하고 자족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습득해가는 기쁨을 보여준다.

헨리 소로우(Henry David Thoreau.1817∼1862)

                                  

 『월든』은 정확히 말하면 소설은 아니지만, 미국 문학사의 초석임에는 틀림이 없다.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소로우는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근교의 월든 호숫가에 지은 작은 통나무집에서 검소한 자급자족의 독거 생활을 하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개인적, 정치적 철학을 구상하고 또 실천하였다. 방대한 양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열여덟 편의 연작 에세이인 『월든』은 이 시기의 소로우의 사상과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군중은 조용한 절망의 삶을 영위한다”라고 확신한 소로우는 자신의 삶을 모든 면에서 “단순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숲에서 얻거나 자신이 직접 경작한 것만을 먹었다. 산책이나 낚시, 수영과 같은 운동을 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관찰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사색하면서 보냈다. 그의 가장 큰 호사는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여가였다. 그는 “인간은 자신이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는 것들의 수와 비례한 만큼 부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에머슨의 선험주의 철학에 깊은 영감을 받은 소로우는 기존의 종교를 거부하고 자연을 통한 신과의 개인적인 유대를 추구했다. 그러나 소로우에게 있어 자연은 영적인 존재만은 아니었다. 그는 원시적인 야만성 역시 똑같은 존경심을 가지고 묘사하였다. 또한 전통의 편협한 굴레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고 젊음의 미개발된 잠재력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정신 덕분에 자본주의에 대한 과격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수세대에 걸친 미국인들이 『월든』에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소로우의 실험은 혁명적이거나 인간혐오적인 것이 아니었다. 실용적이고, 정직하고, 아름다운 이 작품은 한 인간이 “단순하고 독립적인 존업과 신뢰”의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의 보고서이다.

 

 

 1845년 3월부터 오두막을 짓기 시작한 소로우는 7월 4일 그곳에서 첫날밤을 보낸다. 공교롭게도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그날로부터 위대한 삶의 실험은 시작되었다.

 

“나는 숲으로 갔다. 온전히 내 뜻에 따라 살고, 삶의 본질적인 면에 부딪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삶에서 배워야만 하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또 죽음을 맞게 됐을 때 지금껏 제대로 살지 않았다고 후회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한 것이니까. 나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이런 목표를 단념하고 싶지 않다. 나는 깊이 있는 삶을 살며, 삶의 골수(骨髓)를 완전히 빨아먹고 싶었다.”

 

 위와 같은 소로우의 결심은 에머슨이 「미국의 학자」에서 쓴 “우리는 우리의 발로 걸어야 하고, 우리의 손으로 일해야 하며, 우리의 머리로 말해야 한다”라는 소명에 대한 응답이었다.

 소로우는 문명화된 삶이라는 변덕스러운 바다 한가운데에서 노예로 살기보다 일체의 물질문명을 뒤로하고 월든 호숫가에 들어선다. 단순한 숲 생활자가 아닌 육체노동자가 되어 무소유의 자연주의적 삶을 실천한다. 소박하고 현명하게 산다면 최소한의 경비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때 비로소 삶의 정수를 마주할 수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한 셈이다. “우리는 왜 그처럼 성공하려고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토록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일까?” 문명의 허상을 꿰뚫는 소로우의 외침은 여전히 날카롭다. 19세기에 쓰인 이 책이 20세기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끊임없는 불안과 근심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이상향으로서 빛을 발하는 이유다.

 소로우의 한 칸짜리 오두막에 있는 살림살이라면 침대와 탁자, 책상, 그리고 우정을 위한 의자 세 개가 전부였다. 그는 그곳에서 낮에는 농사를 짓고, 자연을 관찰하며, 저녁이면 책을 읽고, 우주의 더 높은 법칙들에 대해 사색했다. 때때로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에머슨, 호손, 채닝 같은 이들과 우정을 만끽했다. 그의 삶은 관찰자로서 사색가로서 그리고 자연예찬자로서 자연과 환경, 지리, 경제, 역사 전반에 대한 탐색과 사색으로 가득 채워진 것이었다. 그의 기록은 여러 자연의 소리들, 고독, 호수, 농장, 동물들, 난방, 과거의 거주자들과 방문객들, 사철 계절에 따른 변화 등에서부터 기독교와 불교, 유교, 힌두교 등의 고대 경전까지 그리스로마 신화와 전설, 철학 등 방대한 양의 동서양 고전을 넘나드는 소로우의 깊은 사유를 통해 구현되었다.

 

 

 실제로 소로우는 하버드대학 졸업 때의 연설 <상업정신>에서, 1주일에 하루만 일하고 나머지 6일은 사랑과 영혼의 안식일로서 자연 속에 잠겨 자연의 숭고한 계시를 받으라고 말하고, 일생동안 이와 같은 삶을 살려고 하였다.

 그는 가업인 연필제조사업 외에 교사·측량·목공 등에 종사했는데 일정한 직업 없이 콩코드에 사는 초월주의자 R.W. 에머슨과 그 주변 사람들과 친교를 맺고 매일의 관찰과 사색을 방대한 양의 일기로 남겼다.

 소로우의 저서로는 <콩코드강과 메리마크강의 1주일>(1849) 「월든-숲 속의 생활」(1854)이 있다. 그는 구체적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였는데, 사물을 단순히 사실로서만 보지 않고 월든호에 대하여 “이 호수가 하나의 상징으로서 깊고 청순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을 나는 감사하고 있다.”, “내가 호수에 대해서 관찰한 것은 윤리적으로도 진실이다.”라고 역설한 것처럼 구체적 사물의 저편에서 보편성을 간파하려고 하였다. 사후에 <메인주의 숲>(1864) <케이프코드>(1865) <캐나다의 양키>(1866) 등의 여행기가 간행되었다.

 한편, 그의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노예제에 반대하여 1846년 7월 투옥되었다가 하루 만에 석방되었는데, 이 체험이 뒤에 <시민불복종>(1849)으로 정리되었다. 개인의 양심에 바탕을 둔 불복종을 역설하고 <전혀 지배하지 않는 정부가 최상의 정부이다>라고도 주장하였는데, 뒤에 M.K. 간디와 M.L. 킹목사에게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