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전투와 영웅호걸의 무용담 속에 숨은 삼국지는 무엇일까?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치열한 전투와 영웅호걸의 무용담 속에 숨은 삼국지는 무엇일까?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인간의 지식과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들은 항상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아틀란티스 대륙은 있었을까? 네스 호의 네시는 있을까? 이런 의문과 호기심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지고 과거에는 의문이었던 수수께끼들도 하나씩 풀어지면서 과학이 발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불가사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발견과 발전이 일어날 수 있는 것도 불가사의를 만나는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쟁투의 시기였던 삼국시대를 우리는 소설과 영화, 드라마로 만나왔다. 이 시대 영웅호걸의 대단한 활약은 언제나 우리를 흥분시킨다. 다양한 캐릭터와 사건이 공존하는 삼국지는 경영의 노하우를 읽는 참고서로, 또 수신을 위해 필독해야 하는 자기계발서로, 순수한 이야기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소설로, 수세기 동안 수많은 독자를 만나왔다. 그러나 늘 그렇듯 잘 알려진 이야기 뒤에는 비화가 더욱 많이 존재하는 법이다. 화려한 이야기 속에 아무도 몰랐던 과학과 미스터리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심지어 현대 과학에 영감을 준 고사들과 첨단기술로도 아직 풀지 못한 불가사의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을까?
이 책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의 저자 이종호 박사는 단순한 소설적 과장으로 보이는 이야기들의 배경에 중국 문화와 역사의 일면들이 숨어 있음을 밝힌다. 평생을 과학자로, 고대 문명 탐사가로 살아온 저자는 알코올의 체내 반응에 대한 계산부터, ‘심지효과’로 불리는 과학적 원리에 대한 탐구, 형광생물에 대한 최근의 연구 동향, 마취제와 절개수술의 역사, 중국의 독특한 식인 문화에 대한 탐사, 중국과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에 대한 시기적 비교를 통한 문화사적 고찰, 그리고 저 유명한 적벽대전의 수많은 일화가 남긴 파장까지 아우르며 삼국지가 감추었던 미스터리와 과학을 밝혀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과학의 미스터리로 남은 인체 자연연소와 형설지공(螢雪之功)의 실질적 가능성, 해부와 수술 그리고 마취제의 관계, 식인 문화와 권력의 연관관계, 고구려 개마무사의 활약, 삼국시대를 뜨겁게 달군 무기들 뒤에 숨겨진 과학적 원리, 10만 개 화살과 동남풍으로 유명한 적벽대전, 칠종칠금으로 잘 알려진 제갈 량의 남만 정벌의 실질적 진실을 밝혀 놓았다.
이종호 박사는 문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 등 인문·사회 과학과 자연 과학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지식인이다.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프랑스 페르피냥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 제출상을 수상한 후 해외유치 과학자로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과학기술처장관상, 태양에너지학회상,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간편하게 50층 이상의 고층빌딩을 지을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 등으로 20여 개 국가에서 특허권을 출원한 바 있다. 과학·문명·역사를 넘나드는 활발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으며, 2009년 한국과학저술인협회에서 주는 저술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현대과학으로 다시 보는 한국의 유산 21가지』『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자들』(공저) 『피라미드 과학』『노벨상이 만든 세상』『세계를 속인 거짓말』『세기의 악당』『과학 한국을 이끈 역사 속 명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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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국지>는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누려온 만큼, 작품에 대한 찬사는 일일이 지면에 적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화려한 이야기 속에 아무도 몰랐던 과학과 미스터리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삼국지 속에는 종종 중국 특유의 과장이나 왜곡으로 치부되곤 하는 이야기와 소재들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말술을 마셨다던 삼국지 시대의 영웅들의 주량은 현재의 단위로 환산하면 그야말로 사람이 아닌 주신의 수준이며, 삼국지의 대표 악당 중 하나인 동탁은 사망 후 인간 등불 신세가 되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진류왕을 위기에서 구한 것은 반딧불이들이었으며, 삼국지의 영웅들을 치료했던 신의(神醫) 화타는 각종 신화에 가까운 기행 속에 마취제 없이 절개수술을 하기도 했단다. 온화하기로 이름난 영웅 유비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고기를 먹었으며, 신출귀몰한 제갈 량의 팔진법은 미노스의 미궁을 방불케 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그 유명한 적벽대전은 수많은 작가들의 잘못된 기록에 의해 창조된 허구적 작명이었다고 하니, 대체 그 시대 중국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종호 박사가 삼국지 속에서 풀어내고자 한 주제는 아래의 12가지이다.
1. 술꾼 장비의 주량은 얼마나 될까
2. 살찐 동탁의 몸으로 등을 만들었을까
3. 반딧불이 조명, 가능할까
4. 화타의 뇌수술, 가능했을까
5. 온화한 영웅 유비, 인육을 먹었을까
6. 최고의 전법 ‘36계 줄행랑’은 무엇일까
7. 신출귀몰한 제갈 량의 '팔진법'은 무엇일까
8. 공성과 수성, 그 치열한 줄다리기의 과학은 무엇일까
9. 조조의 이유 있는 ‘오버’, 오환 정벌의 이유는 뭘까
10. 제갈 량은 왜 남만(南蠻)을 공격했을까
11. 적벽대전(赤壁大轉)은 존재했을까
12. 동남풍을 부른 제갈 량의 비밀은 무엇일까
==> 답은 이 포스팅의 아랫부분에 정리해보았다.↓
저자 이종호 박사는 단순한 소설적 과장으로 보이는 이러한 이야기들의 배경에 중국 문화와 역사의 일면들이 숨어 있음을 밝힌다. 동시에 우리 역사와의 연관성을 파헤친 점도 주목할만 하다.
중국에서 개마에 대한 기록은 188년 처음 나오지만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최초의 증거는 302년 당시의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그러나 이 출토품은 누벼 만든 단순한 가슴가리개 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에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위·촉·오의 철기병 또한 부분적인 앞가리개를 사용했을 뿐 고구려와 같은 장갑철기병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기마부대보다는 보병에 주력하였으므로 기마부대는 외인부대를 활용했다. 삼국지 전반에 걸쳐 활약하는 기마부대의 대부분은 외인부대이며, 삼국시대가 시작되기 전 한나라는 흉노, 선비, 오환 등을 용병으로 채용해 국경을 지키게 했다. 조조는 기마부대라는 외인부대를 활용했고 그들의 노하우를 통해 군사력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당시 장갑철기병 군단을 보유한 동아시아 최강국인 고구려를 공격할 정도의 국력이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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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충성을 바친 유비. 그리고 관우,장비(왼쪽), 제갈량의 숙적,사마의(오른쪽)
위에서 제시된 주제의 답을 간단히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주정뱅이 장비는 술 10말을 마셨다. 그 10말은 현대의 '말'과는 개념이 다르다. 환산하면 현대의 막걸리 병으로 16병, 맥주병으로 21병이다. 장비에게는 주량보다는 주사(酒邪)가 문제였다.
2. 살찐 동탁의 배에는 지방이 많았으므로 ‘심지효과’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3. 반딧불이 한 마리는 약 3룩스의 빛을 발하므로 200마리 정도를 모은다면 신문을 읽을 수 있다. 그러니 반딧불이가 한밤에 황제의 길을 밝혀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4. 동양은 서양과 달리 외과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화타가 살았던 시대가 2세기인데다 과연 그가 마취제를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가 정말로 중환자를 마취시켜 개복수술과 뇌수술을 할 수 있었는지 의아하다. 화타의 수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5. 식인은 중국황제의 고유권한이었다. 중국대륙의 천재(天災)도 식인문화에 기여하였다. 식인은 미덕으로 전해지고 있고 식인문화를 빼고 중국문화를 거론할 수 없다. 중국인들은 19c말까지 인육을 즐겨 먹었다. 유비 역시 인육을 즐겨 먹은 것으로 보인다.
6. 강한 적과 마주쳐 승산이 없을 때는 투항, 강화, 퇴각하는 세 가지 길밖에 없다. 항복하면 완전히 패하는 것이고, 강화하면 반쯤 패배하는 것이지만 달아나면 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생각이었다. 삼국지에서 보이는 유비는 각종 도주 일화는 정말 많아서 진정한 36계 줄행랑의 대가였다. 그는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처자식도 내버리고 도주하곤 했다.
7. 팔진도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8가지의 전투대형으로 이루어져 치밀하게 배치된 전진(戰陣)을 뜻하는 종합진법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돌로 교묘하게 쌓아올린 ‘미궁’, 즉 적군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만든 군사장애물이라는 설이다. 학자들은 제갈 량이 두 가지 다 사용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마술과 같은 팔진법을 제갈 량만 구사할 줄 알았다면 촉나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8. 삼국지의 역사는 공성전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공성과 수성을 위한 노력에는 당대의 과학과 기술이 총동원되었다.
9. 조조는 고구려 등 북방 기마민족이 갖고 있는 군사적 노하우를 갖고자 했다. 그러나 고구려는 만주지역에 웅거하고 있는 동아시아 최고의 군사대국으로 조조가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조조는 고구려라는 거대한 제국을 건드리지 않고 중국과 인접한 잠재세력을 견제하려했는데 여기에 희생된 것이 삼국지 초창기의 오환과 후대에 연나라를 세운 세력이다.
10. 제갈 량과 같은 천하의 전술가가 굳이 남만의 공격에 총력을 기울였던 이유는 남쪽 후방을 안정시키고, 남만의 물소 뿔과 흑단 등의 전략물자를 안전하게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 주 이유였을 것이다. 물소 뿔은 튼튼한 각궁 제작에, 흑단은 마차바퀴 제작에 필수품이었다.
11. 적벽대전은 중국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영웅들의 지략이 부딪치는 거대한 장이나, 작가 나관중의 상상력에 의해 상당히 과장되어 꾸며졌다. 실제 전투는 적벽이 아닌 오림에서 벌어진 그저 그런 전투였으나 부실한 기록으로 인해 적벽대전이라는 전무후무한 대형전쟁으로 불리고 있다. 오림은 온통 절벽뿐인 협소한 지역이라 실제로 전투가 불가능한 지형이다.
12. 동남풍을 비는 제갈 량의 모습에도 과학이 숨어있다. 본래 적벽 일대에는 12월경 동남풍이 분다고 한다. 제갈 량이 굳이 제를 올려 바람이 일기를 빌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특히 이 책이 돋보이는 것은 유적지들을 직접 돌아보며 전승된 이야기와 진실 간에 존재하는 간극을 찾아내고 좁히고자 한 저자의 노력이다. 구당협과 백제성, 삼협과 강릉길, 적벽과 오림 등지를 발로 뛰며 일일이 돌아보고 확인한 저자의 노력은 삼국지가 지니는 현재적 의미를 더욱 새롭게 되짚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현재의 유적지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자료들은 이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재미라 할 수 있다.
끝으로……. 허구가 70%이상이라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가 아닌, 역사적 사실인 위- 오- 촉의 삼국사를 제대로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경제학자 김운회 교수가 쓴 <삼국지 바로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