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딸이 있다면 꼭 읽어보세요 『사랑에 서툰 아빠들에게』
10대 딸이 있다면 꼭 읽어보세요 『사랑에 서툰 아빠들에게』
책을 여니 도입부에 다음과 같은 지은이의 말이 보인다.
"이 책은 사랑에 서툰 아버지들이 딸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학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씌어졌다. 부디 이 책이 소통하기 어려운 10대 딸과의 의미 깊은 전쟁을 치르는 데, 더불어 '사추기'를 맞이한 아버지 자신의 삶을 성장시키는 데 꼭 필요한 거름으로 쓰이기를 바란다."
‘왕따’라든가 ‘학교폭력’이 문제가 되어 연일 세모의 매스컴을 장식한다.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심한 우울함이 밀려온다. 자식 키운다는 것이 새삼 힘들게 느껴지고 그 모든 것이 기성세대인 우리들의 잘못인 것 같아 마음은 천근만근 무겁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고 예측불가능하게 바뀌고 있다. 기성세대인 우리가 겪어왔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살이에서 쉽지 않은 것은 없겠지만 그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사춘기’의 딸 교육문제가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딸 때문에 4년이란 세월을 매우 힘겹게 보냈다. 딸아이가 중 2때 이른바 <일진>이라고 불리우는 '나쁜 친구’들의 영향을 받는 바람에 부모에게 고통을 주기 시작한 것인데 (딸아이는 지금 고2다) 부부에게는 실로 태산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 후유증은 너무도 심각하여 지금도 과연 그 터널을 빠져나왔는지 아닌지 항상 노심초사 중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원인인지 파악을 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대책은 과연 무엇일까? 우연히 서점에서 『상처 떠나 보내기』라는 책을 구입하여 읽다가 심리학자인 저자가 쓴 다른 책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오늘 소개하려는 책 『사랑에 서툰 아빠들에게』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모든 잘못된 원인이 부모처럼 무난하게 자라주지 못한 딸아이에게 전적으로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은 커다란 오산과 착각이었다. 학교, 교우관계, 교육환경, 사회적인 분위기 등 여러 원인이 얽혀서 문제가 발생했겠지만 그중 아버지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세상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애틋한 관계가 아버지와 딸이다. 그러나 10대의 딸과 40대의 아버지는 자신의 삶에 짓눌려 쉽게 엇나가고 쉽게 틀어진다. 딸을 아끼는 마음은 하루하루 깊어지지만, 어쩐지 아버지의 표정은 점점 무뚝뚝해지고 딸에 대한 염려는 잔소리가 되어버린다. 딸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만 품어두고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모든 아버지들에게, 이 책은 더 늦기 전에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라고 독려해주었다. 그럼으로써 아버지와 딸이 한층 성숙한 인생의 동반자로 거듭나는 지혜를 알려준다.
저자 이승욱은 교사로 10대 아이들과 함께하는 동안 배움과 성장의 삶이 간절해졌다고 했다. 뉴질랜드에서 정신분석과 철학을 공부했고, 뉴질랜드 국립 정신병원에서 심리치료 실장으로 1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다. 2년 전 한국에 돌아와 하자작업장학교 교감으로서 대안학교에 모인 10대 아이들과 함께했다. 현재는 개인분석, 부부치료, 가족치료 상담 클리닉 ‘닛부타의 숲’을 운영하면서 가족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치유하고 있다.
‘어릴 땐 잘도 품에 안기더니만, 어느새 저렇게 커서….’ 자신의 철옹성인 양 방문을 걸어 잠그는 딸을 보면서 아버지는 만감이 교차한다. 아무리 살갑던 부녀관계도 딸이 10대가 되면 싸늘한 냉각기에 빠져든다. 가벼운 잔소리에도 토라지고 말문을 닫아버리는 딸을 보며 아버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거나 딸에 맞서 폭발하기 일쑤다. 한 번도 자신의 사랑을 오롯이 표현하는 학습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버지들은 어쩔 수 없이 무뚝뚝하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되고 만다. 이 책은 이처럼 사랑을 표현하는 데 서툰 아버지들에게, 일상에서 자신의 가슴을 열어 보이는 방법을 알려준다.
흔히 10대 여자아이들은 반항적이고 앙칼지고, 특히 아버지에게는 적대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내리사랑은 메아리 없는 짝사랑일 뿐이라고 적당히 체념한다. 그러나 이 책은 아버지의 짝사랑 못지않은 딸의 첫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주문한다. 가족치료 상담클리닉을 운영하는 저자는 아버지가 딸에게 최초의 남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직은 미성년이지만 곧 성인이 될 딸과 가장 가까이 있는 남성은 아버지다. 이 책의 2부에서 소개한 10대 딸들의 설문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딸들은 아버지에게 풋풋한 첫사랑과도 같은 낭만과 따뜻함을 바란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부인할 수 없는 심리적 현실이지만 흔히 간과되거나 외면되고 만다. 시간상 내용 전체를 소개하지 못하고 목차만 펼쳐보겠다. 다음과 같다.
2부 사랑이 고픈 딸이 사랑에 서툰 아버지에게 아빠의 마음을 보여주세요 아빠, 먼저 손 내밀어주세요 따뜻한 아빠가 좋아요 아빠의 맨 얼굴이 보여요 아빠,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요 걸어 다니는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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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성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으려면 상대적 개념인 ‘남성’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딸에게 가장 가까운 남성인 아버지가 딸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주고, 이끌어주고,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문이다. 이것은 친구도 엄마도 해줄 수 없는, 오직 아버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이런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지 못하면 딸은 어른이 되어서도 결핍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남편에게, 자녀에게 아버지와 같은 맹목적 사랑과 인정을 요구하게 된다. 자녀 양육의 상당 부분, 특히 딸과의 지난한 소통을 전적으로 아내에게 일임하는 아버지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그렇다면 딸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고 딸이 성인이 되고 있음을 인정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사춘기 딸을 키우는 자신의 경험과 10대 딸을 둔 아버지들과의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아버지들이 실천할 수 있는 17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딸의 교복을 다리거나 매일 기분을 물어보는 것, 신문을 읽으며 세상에 대해 브리핑해 주는 것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딸들의 심리적ㆍ문화적 정서를 헤아리는 몇 가지 이벤트를 제안한다. 한 번씩 야자타임을 하는 것은 권위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딸에 대해 아버지의 권위를 동원해 윽박지르는 대신 권위를 내려놓고 소통하는 길을 보여준다. 가족사를 들려주고, 때로는 술 한 잔 하고, 때로는 가난을 솔직히 털어놓는 진솔한 아버지에게 딸들은 깊은 공감을 느낀다. 아울러 딸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며, 그럼에도 아버지는 언제나 딸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믿음을 줌으로써 딸의 건강한 삶을 축원하라고 조언한다. 이 밖에 딸들이 느끼는 아버지의 모습과 딸들의 바람을 생생하게 들려줌으로써, 아버지 스스로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할지를 성찰할 수 있도록 한다.
어린 시절 우리는 대가족 공동체 또는 마을 공동체라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당시 우리에게는 정서적 안식처를 제공해 주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 엄마에게 혼이 난 다음 할머니에게 위로받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종아리를 맞으면 삼촌이나 고모에게 사탕 하나를 얻어먹으며 분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하면 옆집 친구네 집에 가서 저녁을 얻어먹고 싸움이 끝날 때까지 친구와 놀다 가도 친구 부모님이 눈총을 주지 않았고, 온 마을은 너나 구분 없이 참견하고 돌봐주고 거두어주었다. 아이들에게 정서적 피난처란 이런 것이다. 지금 아이들에게 이런 정서적 피난처가 있는가? PC방, 고시텔, 청소년 쉼터?
그리고 우리 어른들에게도 이런 피난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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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딸과 함께함으로써 아버지 자신도 한층 성숙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지혜를 준다는 데 있다. 세계 80여 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애 행복감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43세 무렵에 인생의 최저점에 도달한다고 한다. 대다수의 40대 아버지들이 딸의 사춘기를 능가하는 불행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말이다. 아들이라는 무게, 가장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자신이 진정 하고 싶었던 꿈을 억누른 채 ‘돈만 벌면 되는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해 온 아버지들에게, 저자는 이제라도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돌아보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그 파트너로 딸을 추천한다. 10대 소년으로 돌아가 10대 소녀와 연애한다는 기분으로, 그러나 인생의 풍파를 다 겪은 아버지로서 남성의 섬세함과 돌봄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라고 조언한다. 이처럼 이 책은 소통하기 어려운 10대 딸과의 의미 깊은 전쟁을 치르는 지혜와 더불어 사추기(思秋期)를 맞이한 아버지 자신의 삶을 성장시키는 통찰을 준다.
이 세상에서 늦은 일이란 없다. 내 개인적으로 지난 4년간 '웃음'이 부재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신산함을 겪었다. 진작 이 책을 읽었더라면 많은 시행착오와 고통을 안지 않고 안정된 부녀관계, 사랑이 넘치는 모녀관계, 웃음이 피어나는 가족관계를 형성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다짐한다. 혼자만 읽기에는 아까운 책이어서 여러분들께 소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