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철학서

희대의 사기극?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언덕에서 2011. 8. 11. 06:00

 

희대의 사기극? 마르코 폴로『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이탈리아 상인· 여행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1254∼1324)가 1271년부터 95년까지 동방을 여행한 체험담을 구술하고, 이것을 루스티첼로가 기록한 여행기로 1299년 경에 발표되었다. 정식 명칭은 <세계의 서술(敍述)>이다. 동서양을 넘나든 많은 무명의 인간들과 달리 그가 불후의 명성을 남기고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여행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1298년 베니스-제노아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제노아 감옥에 갇힌 그는 모험소설 작가 루스티켈로에게 동방에서 보고 들은 자신의 견문을 구술하였다. 우리에게 「동방견문록」이라는 명칭으로 친숙한 <세계의 서술>이 바로 그 기록이다. 책의 원본은 사라졌지만 전세계에 120여 종의 사본이 남아 있다.

 마르코 폴로는 75년에 서아시아ㆍ중앙아시아를 거쳐 원나라의 상도(上都)에 이르러 쿠빌라이에게 벼슬한 이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90년에 일한국(汗國) 국왕에게 시집가는 왕녀 코카친을 수행하라는 명을 받고 해로(海路)로 페르시아 만(灣)의 호르무즈에 도착한 다음 95년에 베네치아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전쟁에 참가했다가 포로가 되었는데, 1298∼99년에 제노바 감옥에서 루스티첼로에게 자기의 동방여행 경험을 구술(口述)하여 필기하도록 한 것이 이 <동방견문록>이다.

 

소년 혹은 청년 마르코폴로가 1259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동방견문을 출발하기전 이별을 하고 있다.

 

 좀 과장된 점이 있긴 하지만 당시의 서아시아ㆍ중앙아시아ㆍ중국ㆍ남해(南海) 등에 관한 기사가 풍부하고 정확하며, 특히 중앙아시아가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 내용은 서문에서 이 여행을 하게 된 경위와 중국에 이르러서 원(元)나라에 봉사하게 된 상황 및 일한국(伊兒汗國) 사신과 동반하여 귀국하게 된 사정을 약술하고, 본문에서는 서·중앙아시아를 횡단하는 자세한 행정, 몽골조정의 여러 사정, 중국 여행에서 얻은 견문 및 귀로의 항해에서 통과한 남해 여러 나라의 실황을 보고하고 있다.

 내용이 매우 신기하여 처음에는 유럽인들이 믿지 않았으나,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아시아 여행을 함으로써 이 책의 기사가 정확함을 알게 되었고,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의 계기가 되는 등, 지리상의 발견에 큰 역할을 하였다. 루스티첼로가 필기한 원본은 아마도 중세이탈리아어로 쓰였을 것이나, 흩어지고 없어져 현존하는 것은 원본을 윤색ㆍ가필ㆍ삭제한 많은 사본들이 만들어져 전해지다가, 1934년 이 사본을 혼합하여 A.C.물과 P.펠리오의 공동편집으로 단일본이 되어 나왔다.

 

 

 

 

 

 L.F. 베네딕트는 이들 이본(異本) 140여 종을 검토하여 다음의 6계통으로 정리했다.

 ① F본(本) : 이탈리아어풍의 중세프랑스어로 씌어진 14세기의 사본

 ② FG본 : 글레고아르란 인물이 원본을 표준 프랑스어로 번역한 14세기의 사본

 ③ TA본 : 제2차 원본을 1305년경 토스카나방언으로 번역한 사본

 ④ VA본 : TA와는 별개의 제2차 원본을 베네치아어로 번역한 14세기 초기의 사본

 ⑤ P본 : 14세기 중엽, 프란체스코 피피노에 의한 VA본의 라틴어역(譯) 사본

 ⑥ R본ㆍZ본 : F본 이전의 텍스트에서 파생한 여러 사본. R본은 G. 무조에 의한 이탈리아어역의 1559년판본, Z본은 1470년경의 라틴어역 사본인데, 그것들은 모두 근세 유럽어로 번역되어 있다. 이들 사본을 혼합하여 1934년 A.C.물과 P.펠리오의 공동편집으로 단일본이 되어 나왔으며, 한국에서도 1964년 정운용의 번역으로 [을유문화사] <세계사상교양전집>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동방견문록>을 썼던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1324년 임종할 때 곁에 있던 신부는,

 “그 동안 지어낸 거짓말을 모두 취소하고 하느님 앞에 참회하라”

고 권고했다고 한다. 1271년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에서 중국까지 여행하고 17년 동안 원 나라에 머물렀다 돌아간 그는 동방에 관한 갖가지 얘기를 털어놓았었다. 신부의 권유는 동방세계에 관한 그의 말이 당시 얼마나 충격적인 내용으로 가득 찼는지를 실감케 해 준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여행기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상상의 산물이라고 여겼다. 신부 역시 ‘거짓말쟁이’ 마르코 폴로에게 축복을 빌어 천국에 인도할 수 없었기에 참회를 권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숨을 내몰아 쉬던 그는,

 “내가 실제로 본 것은 아직 절반도 다 털어놓지 못했는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고 한다. 그가 쓴 <동방견문록>은 당시 유럽세계에 이처럼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동방견문록>은 13세기 이란, 중앙아시아, 몽고 등의 역사와 지지 민속에 관한 귀중한 문헌으로 오늘날까지 평가되고 있다. 고대아시아를 가로지르는 통로였던 이 실크로드라는 말은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맨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이름이다. 실제로 실크로드에 사람이 다니기는 BC 4세기경부터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서방의 보석과 중국의 비단, 모피 등이 교역 대상이었던 실크로드는 동서세계사의 교류 루트로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마르코 폴로는 실제 동방에 가지 않았으며 그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다른 상인들의 이야기를 따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래 기사)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는 죽는 순간까지 거짓말로 일관했던 희대의 픽션작가인 셈이다.

 

 

 


 

伊연구진 "마르코 폴로, 동방 가지 않았다" 주장 (연합뉴스 2011. 8/11자)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역사상 가장 훌륭한 탐험가로 꼽히는 마르코 폴로가 실제로는 동방에 가본 적이 없으며, 그가 쓴 '동방견문록'은 다른 상인의 이야기를 따온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9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인터넷 판에 따르면 이탈리아 고고학자들은 중국과 극동 지역에서 수년간 교역을 한 것으로 알려진 마르코 폴로가 사실은 흑해 동쪽으로는 가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또 마르코 폴로가 1271~1291년 페르시아와 극동 지역을 여행하면서 썼다고 알려진 동방견문록도 사실은 13세기 흑해 주변에서 교역하던 동료 상인이 중국, 일본, 몽골제국을 엮어 전한 이야기를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꾸며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이탈리아 역사 잡지 '포커스 스토리아'에서 몽골제국의 쿠빌라이 칸이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 시도했던 일본 침략에 대한 마르코 폴로의 묘사에 많은 모순과 부정확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연구를 이끈 나폴리대학의 다니엘레 페트렐라 교수는 "마르코 폴로는 1차 침략에서 한국을 떠난 몽골 함대가 일본 해안에 도달하기 전 태풍을 맞았다고 묘사했는데, 이는 사실 2차 침략 때인 1281년에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르코 폴로가 이 두 사건을 혼동해 내용을 뒤섞어버렸다"며 "직접 눈으로 봤다는 사람이 7년이나 차이 나는 두 사건을 혼동할 가능성이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페트렐라 교수는 마르코 폴로가 책에서 몽골 함대가 5개의 돛대를 가졌다고 묘사했지만, 연구진이 일본에서 발굴한 실제 함대의 잔해에는 돛대가 3개뿐이었다면서 묘사 내용이 사실과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마르코 폴로가 몽골 함대의 외피에 사용된 역청 물질을 '추남(chunam)'이라는 페르시아어로 설명한 것과 관련, 그가 보통 무언가를 묘사할 때 현지 이름을 쓴 것과는 달리 페르시아어를 사용한 점도 수상하다고 꼬집었다.

bry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