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철학서

충무공 전장의 기록 『난중일기(亂中日記)』

언덕에서 2009. 11. 27. 06:11

 

 

 

충무공 전장의 기록 난중일기(亂中日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저작이다. 시중에 여러 출판사의 번역본이 간행되어 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의 텍스트 북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 그대로 임진왜란 중의 진중 체험을 일기로 엮은 것으로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과 함께 쌍벽을 이룬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년) 5월 1일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선조 31년) 11월 17일까지 전후 7년 동안의 일기로서 충무공이 몸소 진중에서 기록한 수기이므로 이충무공의 일대기와 임진왜란의 경과를 연구하는데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사료다. 7책. 부록 1책. 빠진 부분도 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1592년)로부터 끝나던 해(1598년)까지의 일을 간결ㆍ명료하게 기록하고 있는 대단히 중요한 전적(典籍)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일기와 서간첩 및 임진장초와 함께 국보 제 76호로 지정되었다.

 

 이 일기에는 이 충무공의 나라와 겨레를 생각하는 절절한 충정, 부하와 혈육을 사랑하는 따뜻한 인간애가 생생하게 넘쳐나고 있다. 이 충무공의 자필초본은 그 후손에 의해 전해져 충무공의 서간집 및 임진장초(壬辰狀草) 1백81장을 아울러 도합 9책이 국보 제76호로 지정, 충남 아산의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다.

 

  

 친필초고본과 이충무공전서본

 

 난중일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하나는 이충무공의친필 초고본으로, 충남 아산(牙山)의 현충사(顯忠祠)에 보관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있다. 본래 충무공은 다만 일기를 썼을 뿐, 거기에 어떤 이름을 붙였던 것은 아니며, 정조 때에 이르러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편의상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권5에서 권8에 걸쳐 수록한 다음부터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충무공전서>는 1795년(정조 19년)에 완성되었는데, 그 편찬작업은 윤행임(尹行恁)과 유득공(柳得恭)이 맡아 하였다. 그런데 충무공의 친필 초고본과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 까닭은 전서의 편찬자들이 충무공의 친필 초고를 가져다가 정자로 베껴 판각에 올릴 때에 생략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대신 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부분이 정작 충무공의 친필 초고본에는 빠진 부분도 있다. 즉, 임진년 정월 1일부터 4월 22일까지, 그리고 을미년(乙未年) 1년 동안과 무술년 10월 8일부터 12일까지가 누락되었는데, 이것은 필경 편찬작업과정이나 아니면 그 후에 유실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친필 초고본은 별책 부록까지 합하여 8책에 이르며, 제 5책과 제 6책은 두 책이 모두 정유년(丁酉年) 일기여서, 8월 4일부터 10월 8일까지가 중복되어 있다. 그 까닭은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제5책에 간지(干支)가 잘못 적혀 있는 곳이 많고, 또 내용을 보아도 제 6책의 것이 비교적 자세하게 적혀 있는 점으로 미루어, 나중에 충무공이 시간 여유를 틈타 앞의 간지의 잘못을 바로잡는 한편, 기억을 더듬어 보완하였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주요 내용 및 가치

 

 국난을 극복해낸 수군사령관으로서 충무공의 엄격하고도 지적인 진중생활을 평이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충무공의 인간적인 단점들도 엿볼 수 있다. 별다른 이유없이 병적으로 원균을 싫어하는 심적인 문제와 토사곽란과 불면증을 달고 다니는 군인으로서는 심각한 건강 문제가 진솔하게 서술되어 있다. 유비무환의 진중생활, 인간 이순신의 적나라한 모습과 생각, 부하를 사랑하고 백성을 아끼는 마음, 부하에 대한 사심없는 상벌의 원칙, 국정에 대한 솔직한 간언, 군사행동에 있어서의 비밀 엄수, 전투상황의 정확한 기록, 가족ㆍ친지ㆍ부하장졸ㆍ내외 요인들의 내왕 관계, 정치ㆍ군사에 관한 서신교환 등이 낱낱이 서술되어 있다. 특히 난중에 당한 모친과 아들의 죽음에 한탄해하는 기록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첫째,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상황을 가장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일기로서, 전란(戰亂) 전반을 살피는 사료(史料)로서의 가치와 나라의 위급을 구해낸 영웅(英雄)의 인간상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생사를 걸고 싸우던 당시의 진중일기(陣中日記)로서 그 생생함이 더욱 돋보이며, 단순한 전쟁사 이상의 가치가 있다.

 셋째, 그 당시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군사 등 여러 부문에 걸친 측면사와, 특히 수군(水軍)의 연구에 도움을 준다.

 넷째, 충무공의 꾸밈없는 충(忠)ㆍ효(孝)ㆍ의(義)ㆍ신(信)을 보여주는 글이라는 점에서 후세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다섯째, 무인(武人)의 글답게 간결하고도 진실성이 넘치는 문장과 함께 그 인품을 짐작케 하는 웅혼(雄渾)한 필치는 예술품으로서도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