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悲歌) / 신동춘
비가(悲歌)
신동춘 (申東春.1931~)
아! 찬란한 저 태양이
숨져버려 어두운 뒤에
불타는 황금빛 노을
멀리 사라진 뒤에
내 젊은 내 노래는
찾을 길 없는데
들에는 슬피 우는
벌레 소리뿐이어라
별같이 빛나던 소망
아침 이슬 되었도다
- 시집 <신동춘 시전집> (한국문학도서관 1996)
이 시를 쓴 분은 여류시인 신동춘(1931 ~ )으로 그는 평북(平北) 신의주(新義州) 출생이다. 신의주는 중국과 국경을 맞닿은 미지의 도시이다. 바다와 강을 안고 있어서 이미륵이 사랑했던 도시인데 바다와 낙동강을 끼고 있는 부산과 비교하면 맞지 않는 비유일까? 과거 필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종합상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누군가가 장래 희망을 물으면 남북통일이 될 때 신의주 지점장이 되는 게 꿈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신동춘 시인의 작품에서는 선명한 북방의 정서가 은연중에 살아있다. 그의 시에 넘치는 지적인 세련미는 서정시의 교본처럼 느껴진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했던 시인은 영국의 3대 낭만파시인 셰리ㆍ워즈워드ㆍ키이츠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시에서 보이는 선명한 이미지 구사는 난해성(難解性)의 함정에서 시를 구해내고 있다. 위의 시에서는 대부분의 시인들이 시를 쓴다는 이유로 자기중심적으로 취사선택해 왔던 복잡한 언어의 나열과 같은 난해함과 번잡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 대신에 세상 모든 부질없음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시의 참맛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황혼의 언덕에 서서 세상을 관조하는 노시인의 애절한 시심을 엿볼 수 있다. 세상 시름에 고달픈 이들에게 위의 시는 잠시나마 작은 위안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쓰고픈 욕망에 이끌려 자기 목소리를 찾아 헤매는 구도자와 같은 성품을 가졌으리라 여겨지는 여류시인의 달관되고 원숙한 경지가 피부에 와 닿는다. 고원(高原)같이 드넓게 펼쳐진 산마루 갈꽃 사이사이에서 태양이 빛난다. 강 건너편에서는 서녘 하늘 붉게 타오르며 시린 바람 불어오고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이 시는 김연준이 곡을 붙인 가곡으로도 유명하다. 시 전체를 감싸고 도는 비장한 멜로디와 소프라노 떨림은 장중하다. 젊은 날의 꿈과 순정이 느껴지는 몇 줄의 운문이 가을이 깊어감을 전해준다. 우리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2009년 10월의 마지막 달력이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