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현대소설

버지니아 울프 장편소설 『등대로(To the lighthouse)』

언덕에서 2018. 6. 6. 06:00

 

 

버지니아 울프 장편소설 『등대로(To the lighthouse)』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1882∼1941)의 장편소설로 1927년 발간되었다.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1920년대 영국의 대표적 걸작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보통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소설적인 별다른 외부적 사건 없이 진행되어 이야기의 줄거리가 없다.

 스코틀랜드 서해안의 섬에 있는 별장에서 피서생활을 보내는 대학교수의 가정과 그의 친구 및 지기들을 배치하여 시간의식의 미묘한 효과를 묘사하였다. 등장인물은 철학자 램지 부처, 아들 제임스, 독신의 여류화가 릴리, 무신론자인 청년 탠즐리 등이다.

『등대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가운데 자전적인 요소가 가장 강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램지 부처는 다름 아닌 울프의 부모, 줄리아와 레슬리 스티븐을 모델로 하고 있다. 작품의 구조는 10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이틀 동안 벌어지는 일들이다. 제1부 ‘창문’은 헤브리디스 제도(스코틀랜드 서쪽의 열도)의 여름 별장에 모인 램지 가족과 그들의 손님들을 그리고 있다. 작품의 중심부인 제2부 ‘시간은 흐르고’는 모더니즘 화법의 실험으로, 울프는 당시에 막 나타난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표현 기법들을 보여준다. 램지 부인은 죽고 역사와 경험에는 세계대전이라는 금이 간다. 마지막 제3부 ‘등대’에서 예술가 릴리 브리스코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램지 부인의 초상화를 완성한다. 램지 씨와 가장 막내 제임스와 캠은 소설의 첫 부분에서 계획했던 여행 끝에 등대로 찾아온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제1부 <창문> :

 아름다운 여름날, 헤브리디스 군도의 작은 별장에 램지 가족과 그들의 손님들이 모인다. 막내 제임스가 등대에 가고 싶어 하자, 램지 부인은 희망적인 대답을 들려주지만 램지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아들을 낙담시킨다. 재능이 있으나 성정이 불안한 남편 램지를 한결같이 보살피고 내조하는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 여성 램지 부인은 단절되고 분열된 사람들을 화합으로 이끄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감정적인 피로에 시달리며, 자기 행동이 이기심이나 허영심의 발로는 아닌지 괴로워하는 “비관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듯 스코틀랜드의 별장에서의 철학자 램지 일가의 등대행 계획과 그 좌절이 램지 부인과 아이들의 의식을 통해 서술된다. 램지 부인은 아들 제임스(당시 6세)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외로운 섬의 등대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하지만, 날씨가 불순하여 그해 여름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제2부 <세월은 흘러서> :

 제1차 세계대전과 그 뒤 10년이라는 시간의 경과가 시적인 산문으로 상징적으로 묘사된다. 이 10년 동안에 램지 부인은 죽고 제임스의 형과 누이도 죽는다.

 램지는 어느 어둑한 날 아침에 비틀거리며 복도를 따라 걷다가 양팔을 내밀지만 전날 밤 램지 부인이 갑작스레 죽었기에 그의 팔은 텅 빈 채로 남고 만다. 전쟁이라는 인간이 일으킨 재난에 더해 해일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의 위협 앞에서 인간 존재는 더욱 위태롭고 가련하다. 삶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램지 부인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누구에게든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릴리나, 햇살 가득한 낮에도 우중충한 녹색의 졸음기에 싸여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카마이클, 때 지난 유행가를 웅얼거리며 램지 가족의 별장을 정돈하는 맥냅 부인 등 등장 인물들에게 삶은 결코 가볍거나 유쾌한 것이 아니다. 작은 섬을 바라보며 “처량하게도 하찮은 곳이군.”이라고 했던 램지의 말은 마치 이들, 아니 넓게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암시처럼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대륙이 아닌 섬은 안정감과 생의 영속적 의미를 탐구하는 인간에게 그야말로 비극적인 배경이다.

 제3부 <등대> :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살아 남은 사람들만이 다시 그 별장에 모인다. 전에 손님이었던 화가 릴리가 다시 별장을 찾아와 램지 일가가 등대로 가는 모습을 쳐다보면서, 옛날 일과 죽은 램지 부인의 일을 회상한다. 제임스의 나이는 16세, 램지는 상처하여 의기소침해 있다. 이번에는 다행히 날씨가 좋아 옛날에 가지 못한 등대에 간다. 이와 동시에 여류화가 릴리는 모델이 죽고 없어진 초상화를 애써 완성한다. 초상화의 모델인 부인은 이미 죽었으나 주위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이미 불멸의 존재로 남아 있다고 설파한다.

 램지 부인의 이웃이자 아마추어 화가인 릴리 브리스코는 매력적인 램지 부인을 화폭에 담으려 하지만, 존경스러우면서도 거북하게 느껴지는 모순되는 인상들로, 그 내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애먹는다. 부모 세대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젊은 여성이자, 기법과 주제 면에서 자신만의 비전을 찾기까지 고된 여정을 멈추지 않는 예술가 릴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분신으로 보인다. “여자는 그림을 그릴 수 없어. 글도 쓸 수 없어.”라는 탠슬리의 말과, 여자라면 남자를 보살피고 다독여야 한다는 램지 부인의 눈빛에 끊임없이 시달리던 릴리 브리스코는 작품 말미에서 마침내 램지 부인의 그림을 완성해 낸다.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유령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울프는 이 소설에서 죽음의 영향을 탐구하였고, 이를 이야기 전반에 걸쳐 간접적으로 흐르게  했다. 그녀는 소설의 우선순위를 뒤집어 죽음과 결혼을 중심부에서 배제시킨 채 시간이 만들어 낸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간과 기억,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 그리고 예술과 예술이 기록하려 하는 대상에 대한 깊은 관찰이다.

 점심 이후부터 만찬까지의 시간 동안 주로 온화하고 다정한 램지 부인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내적 독백을 다룬 1부, 그 후 10년간의 시간의 흐름과 삶의 변화를 함축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낸 2부, 죽은 램지 부인의 기억 속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 등대로 향해 가는 것을 그린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 존재의 본질과 정신의 내부를 탐구하기 위해 작가는 시간적인 인과성을 과감히 파괴하고 삶과 죽음을 중복시키며 현재와 과거를 신비스럽게 병렬시킨다. 시간의 무상함과 그 속에 위치한 인간 존재의 허무함을 비관적인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20세기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로서 울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작품 『등대로』는 등대가 바라다 보이는 작은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그려 낸 소설이다. 『댈러웨이 부인』에서 선보였던 ‘의식의 흐름’ 기법을 보다 발전적이고 완성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인간 내면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의식의 흐름을 생생히 포착한다. 

 삶과 죽음, 자연과 인생이라는 주제를 섬세한 문장으로 풀어 나간 『등대로』는 1927년 발표되어 문단과 대중 모두에게서 찬사를 받았다. 명민한 철학자이나 위압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지낸 쓰라린 유년 시절의 추억과, 젊은 세대 여성이자 예술가로서의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작가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등대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작가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1부와 3부가 멋지게 서로 대조를 이루며 어울리는 교묘한 시간 구성을 가지며, ‘의식의 흐름’ 수법을 사용한 저자의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