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장편소설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Село Степанчиково и его обитатели)』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Dostoevski Fedor Mikhailovich. 1821∼1881)의 장편소설로 1859년에 발표되었다. 풍자적 희곡 형식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가 유배에서 돌아온 후에 쓴 초기 작품 중 하나로, 그의 후속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심오한 철학적 주제보다는 인간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부조리함과 위선에 대한 풍자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이 소설은 도스토옙스키가 <아저씨의 꿈>과 함께 시베리아 유형 직후에 발표한 작품이다. <아저씨의 꿈>에서 보여 준 유쾌한 희극적 기법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고골적 발화와 형상에 대한 패러디의 성격으로 인해 비평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도스토옙스키가 애정을 쏟은 작품으로 작가의 창작 의도인 ‘두 거대한 전형적 성격’의 형상화를 보여 준다.
여기서 ‘두 거대한 전형적 성격’은 작품의 중심 갈등과 주제를 형성하는 주요 인물, 즉 파마와 로스드롭스키의 성격이다. 파마는 소설의 주요 악역으로, 겉으로는 순박하고 인자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려는 욕구를 품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특히 타인의 연약함을 이용해 영향력을 확장하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며, 권위를 차지하려는 자기중심적 성격을 대표한다. 이러한 성격은 사회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형상화하는 전형적 인물로 작용한다. 이에 반해 로스드롭스키는 파마의 반대편에 위치한 인물로, 순수한 마음과 도덕적 가치관을 가진 청년이다. 그는 파마의 음모와 교활한 계획을 직시하고 반대하려 하지만, 그에 대한 직접적 저항이 어려운 상황에서 고뇌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로스드롭스키는 이상적이고 정의로운 인간성을 상징하며, 파마의 음모에 맞서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러한 ‘두 거대한 전형적 성격’을 통해 인간 내면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인간성의 다양한 양상을 제시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예고르 일리치 로스드롭스키는 삼촌 예고르 이바노비치 장군의 초청을 받아 시골 마을 스쩨빤치꼬보로 간다. 삼촌은 로스드롭스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고, 그는 삼촌이 집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부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에 도착한 로스드롭스키는 삼촌이 은퇴 후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있지만, 집안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로스드롭스키는 삼촌의 집안에서 실제 주인이 삼촌이 아니라 파마라는 무능하고 교활한 인물임을 파악한다. 파마는 가난하고 특별한 재능도 없지만, 삼촌의 어머니를 비롯한 집안 사람들로부터 과도한 존경을 받으며 사실상 집안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파마는 말솜씨와 사람들을 조종하는 능력으로 집안 분위기를 지배하며, 삼촌은 파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로스드롭스키는 이 상황을 보고 놀라며 삼촌을 돕고자 결심하지만, 삼촌은 파마를 쫓아낼 의지가 없다. 또한 삼촌은 집안의 고용인 나스타샤와 결혼을 원하고 있으나, 파마는 이 결혼을 반대하고 방해한다.
삼촌의 결혼 문제를 둘러싸고 파마의 방해는 더욱 심해진다. 파마는 삼촌이 나스타샤와 결혼하지 못하도록 집안의 사람들을 조종하며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파마는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삼촌의 어머니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에게 나스타샤를 비난하게 하고, 삼촌은 점점 결혼을 포기할 위기에 처한다. 한편, 로스드롭스키는 파마의 진짜 모습을 폭로하고 삼촌을 파마의 영향력에서 구하려 하지만, 삼촌은 계속해서 파마에게 얽매여 있다.
결국 로스드롭스키는 파마와 직접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 결과, 파마의 위선과 교활함이 드러나면서 집안의 긴장이 고조된다. 로스드롭스키는 파마가 그저 권력을 쥐고 사람들을 조종하는 데만 몰두한 인물임을 깨닫고, 그를 폭로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한다. 이로 인해 파마는 점차 궁지에 몰리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
파마의 지배력은 결국 무너지고, 로스드롭스키와 삼촌은 파마의 영향에서 벗어난다. 파마는 집에서 쫓겨나고, 삼촌은 더 이상 그에게 의존하지 않게 된다. 집안 사람들도 파마의 본모습을 깨닫게 되며, 나스타샤와의 결혼 문제도 해결될 가능성이 생긴다. 결국, 삼촌은 자신의 독립성을 되찾고, 파마로 인해 발생했던 갈등은 종식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시베리아 유형생활은 그에게 세계적인 문호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베리아 감옥 안에서 수인(囚人)들로부터 증오와 적의(敵意)의 표적이었던 그는 서서히 사상이 바뀌게 되었고, 민중으로부터 유리된 공상적 사회주의로부터 민중과의 결합을 기반으로 하는 토양주의로 신념이 바뀌었다. 수형생활 이후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에 대한 새로운 관찰과 사고, 인간세계에서의 선과 악, 비합리성 등이 그의 작품 속에서 여실히 드러나면서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던져주며 많은 공감을 일으키게 되었다.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가 당시 사회의 모순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러시아 귀족 사회의 위선과 권위주의적 인간 관계를 비판한다. 파마라는 인물은 매우 교활하고 위선적인데, 아무런 자격이나 능력 없이도 단순히 말솜씨와 사람들의 감정을 조종함으로써 권력을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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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재가 이처럼 불후의 명작들로 승화된 것은 그의 독특한 문학적 창의성과 깊은 예술적 통찰력에 있었다.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작중 인물의 성격들이 복잡하고 다면적이라는 데 있다. 그는 인간의 내부에 공존하고 있는 모순된 2개의 요소, 소위 이중 인격성을 발견, 폭로하고 미화했다. 도스토옙스키의 평생에 걸친 불굴의 작업은 바로 이것을 추구하는 것이었고, 특히 <죄와 벌>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자신도, “나는 도처에서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다.”고 말했듯이 그는 어떠한 문제든지 극한까지 추구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따지고 위로는 신과 아래로는 생지옥과 대결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을 통해 권력의 본질과 그것이 얼마나 부조리한 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장군처럼 실제 권력을 가진 인물조차 파마 같은 무능한 사람에게 조종당하는 상황은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자주 목격되던 현상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심리학적 탐구의 초석을 보여준다. 각 인물들은 저마다의 심리적 동기와 결핍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심리적 요소들이 어떻게 인간 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는지를 작가는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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