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노름꾼(Игрок)』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Dostoevski Fedor Mikhailovich. 1821∼1881)의 장편소설로 1866년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국내에는 <도박사>라는 제명으로도 번역되었다. 1860년대 전반 작가 자신이 주도한 잡지 [시대]와 [연대기]의 실패, 형과 아내의 죽음 그리고 유럽 도박판에서 진 빚 등으로 인해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 도스토옙스키가 향후 9년 동안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저작권을 내주어야 한다는 출판사의 위협 아래 27일 만에 급조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를 흔들고 괴롭혔던 다양한 사건들이 박진감 있게 그려진 자전적 소설이다. 도스토옙스키 자신도 도박에 빠졌던 경험이 있어 이 작품은 도박이 사람의 삶과 정신에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과 도박으로 인한 몰락 그리고 사랑과 욕망이 얽힌 복잡한 관계가 소설의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독일의 가상 도시 룰렛텐부르크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러시아 귀족 가문의 가정교사로, 자신이 일하는 가문의 사람들과 함께 룰렛텐부르크로 온다. 그는 귀족 가문의 장군과 그 주변 인물들의 재정 문제와 복잡한 인간관계에 휘말린다.
알렉세이는 폴리나라는 여성을 사랑하고 있지만, 그녀는 그를 냉정하게 대하며 그 감정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경제적으로 얽힌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렉세이를 이용하려고 한다. 알렉세이는 폴리나가 원하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도박장에 나가면서 점점 도박에 빠져든다. 처음에는 적은 판돈으로 시작한 알렉세이는 큰돈을 걸기 시작하고, 몇 번의 승리 후 점점 도박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이 시점에서 장군의 재정 문제는 더욱 악화한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마담 블랑슈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 큰돈이 필요하게 된다. 장군은 자신이 유산을 받을 날을 기다리며 도박에 의존하지만, 상황은 점점 좋지 않다.
도박에 몰두하던 알렉세이는 큰돈을 따지만 그 돈으로 그의 인생을 바꾸지 못한다. 그는 큰돈을 땄음에도 자기 삶이 파괴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폴리나와의 관계에서도 성공하지 못한다. 폴리나가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자 알렉세이는 도박 중독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도박 때문에 완벽히 몰락하게 된다.
장편소설『노름꾼』은 도스토옙스키가 45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집필한 작품으로 당시 그의 개인적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도박 빚 때문에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었고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도박 중독과 그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작품 속에 투영했다.
작가는 도박 중독이 인간의 정신과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리고 탐욕과 욕망이 인간관계에 어떻게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나열하고 있다. 알렉세이는 도박에 빠지면서 삶과 사랑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모두 잃어버리지만 자력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폴리나를 위해 도박을 시작했지만 결국 그녀와의 관계조차 도박 때문에 좋지 않게 끝난다.
♣
이 작품에서 거대한 철학적 사상이나 기독교적 색채는 찾아볼 수 없다. 거대 철학의 조각들은 인물의 대화를 통해 발견되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로까지 발전하지는 않는다. 도스토옙스키 하면 떠오르는 짙은 종교적인 색채도 거의 느낄 수 없다. 전 인류를 염려하는 신적인 고통 대신 결핍된 인간의 생생한 고통만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즉, 신의 냄새 대신 사람 냄새가 나는 작품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파괴적 행동을 심도 있게 보여준다. 도박에 중독된 인간은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으며,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이 작품에서도 인간의 자유 의지와 운명에 대한 고찰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비록 27일 만에 즉흥적으로 쓰인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제기되는 주요한 문제들, 즉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환경, 인간의 고독, 신비주의적 세계관, 의식의 분열 등의 문제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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