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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이탈리아의 시인ㆍ비평가ㆍ번역가 콰시모도(Salvatore Quasimodo.1901∼1968)

by 언덕에서 2022. 12. 2.

 

이탈리아의 시인ㆍ비평가ㆍ번역가 콰시모도(Salvatore Quasimodo.1901∼1968)

 

 

이탈리아의 시인ㆍ비평가ㆍ번역가 콰시모도는 원래에는 메티스모(er metismo: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모더니즘 시인들의 운동) 시인들의 지도자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당시의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유력한 시인이 되었다. 195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시칠리아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시라쿠사와 메시나에서 교육을 받았고, 팔레르모에서 공학과 수학을 배운 뒤 로마에서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토목 기사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대학을 졸업한 뒤 10년 동안 이탈리아 정부에서 토목 기사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시를 썼다. 그의 처녀 시는 피렌체에서 발행되는 정기간행물 [솔라리아(Solaria)]에 발표되었다.

 처음에 그는 에르 메티스모를 신봉하는 시인 주세페 웅가레티와 에우제니오 몬탈레의 추종자였으나 첫 시집 <바다와 육지>(1930)를 출판한 뒤, 차츰 에르 메티스모 시인들의 지도급 시인이 되었다. 1935년 이후에는 토목 기사를 그만두고 밀라노에 있는 예술학교에서 이탈리아 문학을 가르쳤다. <가라앉은 오보에>(1932) <유칼립투스의 향기>(1933) <에라토와 아폴리온>(1936) 등 콰시모도의 후기 시집들은 딱딱하고 기교에 치우친 문체와 에르 메티스모의 난해한 상징주의를 보여주고 있지만, 개인적인 관심에서 당시의 사회 문제로 전환한 시도 많이 실려 있다. 마지막 시집인 <시집>(1938) <그리고 곧 황혼이 되리니>(1942)를 끝으로 그의 에르 메티스모 시대는 막을 내렸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하루 또 하루>(1947)를 출간했을 때로부터 죽을 때까지 콰시모도의 작품세계를 형성한 것은 그의 사회적 신념이었다. 그는 파시스트 정권의 부당함과 전쟁의 공포와 이탈리아의 죄악을 상기시키는 시를 많이 썼다. 같은 성격을 지닌 후기 시들은 간결한 언어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심상을 표현하고 있다. 후기 작품집으로는 아이스킬로스의 묘비명인 "나는 말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해한다고"가 들어 있는 <비할 데 없는 지구>(1958) <시 전집>(1960) <주는 것과 갖는 것>(1966) 등이 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죽을 때까지 콰시모도는 놀랄 만큼 많은 글을 번역ㆍ출판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일련의 <그리스 서정시>(1940), 그리스의 비극 극작가인 아이스킬로스ㆍ소포클레스ㆍ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모은 <그리스 비극>(1963), 로마의 시인인 카툴루스ㆍ오비디우스ㆍ베르길리우스의 시, 셰익스피어의 희곡 6편, 몰리에르의 <위선자>, 20세기의 시인인 미국의 커밍스와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의 시 등이 있다. 그는 2권의 이탈리아 시선집을 편찬하고 중요한 평론도 많이 썼는데, 이 평론들은 <시인과 정치인, 그리고 기타 시론>(1960)이라는 평론집과 <연극 비평집>(1961)에 실려 있다. 1971년 <시와 시론>이 출판되었다. 그의 시는 한국에서도 부분적으로 번역ㆍ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