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리) 단편소설 『네프스끼 거리(Nevsky Prospekt)』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소설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리(Gogoli, Nikolai Vasil'evich.1809∼1852)의 단편소설로 1835년 발표되었다. 제정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쓴 다섯 편의 단편을 모은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에 실린 작품이다.
고골리는 처음으로 러시아의 참모습을 그려낸 작가였으며 보잘것없는 소인(小人)을 문학의 주인공으로 형상화한 작가였다. 레프 톨스토이와 이반 곤차로프, 이반 투르게네프로 이어진 푸시킨의 고전적·사실주의적 산문과는 대조적으로, 고골리의 화려하고 격앙된 문체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를 거쳐 상징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안드레이 벨리에게 이어졌으며 혁명 이후의 몇몇 소비에트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독특한 방식으로 부조리한 세계를 조명하고 있는 이 작품은 지극히 현대적인 상상력과 신랄한 현실 풍자 정신으로, 고골을 러시아 근대 문학의 근원지에 자리 잡게 했다.
고골리는 <외투>에서 보이듯이 보통 ‘웃음과 눈물의 작가’로 불려지고, 우스울 만큼 처참하게 학대받는 소관리의 생활이며, 검찰관의 도래에 전전긍긍하는 지방관리의 생활 태도 등은 그가 즐겨 취재하는 제재였다. 그는 또한 소러시아 출신이었으므로 그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ㆍ인정을 도처에 묘사하고 있다. 그의 모든 작품에는 ‘웃음과 울음’의 특징을 잘 표현되어 있다. 러시아 문학에서 그의 이름이 불멸하다는 것도 당연하다. 그는 부패한 당시 관료들을 맹렬히 비판하는 작품을 써서 반대파들의 심한 공격을 받고 러시아를 떠나 주로 스위스, 파리, 로마에서 살았다. 그의 친구인 푸시킨은 고골리를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것 뒤에 보이지 않는 눈물이 숨겨져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갖 계층의 사람이 모여드는 호사스러운 장소인 네프스끼 거리는 수도 시민들의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화가 삐스까료프는 소심하고 온순한 젊은이인 데 비해 친구인 삐로고프 중위는 허영심 많은 속물적 장교이다. 두 친구가 네프스끼 거리의 정체를 밝혀주는 일이 생긴다. 어느 날 저녁 화가와 중위는 네프스끼 거리를 산책하다 우연히 눈에 띈 미녀를 각각 쫓아간다.
한 여인은 검은 머리고, 한 여인은 금발 머리이다. 화가가 설레는 마음으로 쫓아간 여인은 검은 머리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거리의 창녀였고 화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여자가 창녀임에도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며 현실을 부인하고 결국 그녀를 찾아가 청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비웃고 절망에 빠진 화가는 자살한다.
한편 중위가 쫓아간 금발 머리의 여인은 독일인으로 유부녀였다. 그 또한 이 사실에 개의치 않고 그녀를 손에 넣고자 욕망을 불태운다.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부재중일 때 금발 미녀와 춤을 추고 키스를 하려다 돌아온 남편에게 들켜 실컷 두들겨 맞고 쫓겨난다.
소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고골리는 12세 때 네진의 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이때부터 이미 풍자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시와 산문을 써서 잡지에 보내기도 하고 학교 연극에서 우스꽝스러운 노인이나 여자 역을 훌륭히 연기하기도 했다. 1828년 관리가 되려는 꿈을 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으나 돈과 연줄 없이는 살기 힘들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되었다. 배우가 되려고도 했으나 채용심사에서 떨어졌다. 이처럼 궁지에 몰리자 이번에는 시인으로 이름을 빛내겠다는 야망으로 고등학교시절에 썼던 평범한 감상적 전원시를 자신의 비용으로 출판했다.
그러나 그 또한 실패하자 시집을 모두 사서 태워버린 뒤 미국으로 건너가려고 생각했다. 그는 농장을 저당잡혀서 어머니가 보낸 돈을 갖고 독일의 항구 뤼베크로 가는 배를 탔다. 그러나 미국에 가지는 못하고 독일을 여행했을 뿐이었고 곧 돈이 떨어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거기서 형편없는 봉급을 받고 관리로 일하다가 3개월 만에 자리를 옮겼다.
세상에 적응할 수도, 도피할 수도 없기 때문에 속됨과 악을 들추어내려고 더욱 애쓰게 된 한 낭만주의자의 공격적인 사실주의는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와 수필 몇 편이 함께 실린 2번째 작품 <아라베스키>의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전체에 걸쳐 두드러진다. 여기에 실린 <광인일기>에서는 철저하게 좌절한 나머지 과대망상 속에서 좌절을 보상받으려 애쓰다가 마침내 정신병원에 보내지는 한 관리를 주인공이고, <네프스키 거리>에는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몽상가와 모험을 좋아하는 속물이 대조를 이루며, 개정판 <초상화>의 끝부분에서는 이 세상에서 악은 제거될 수 없다는 작가의 신념이 강조되어 있다.
♣
고골리의 생각이나 삶은 기이했지만, 그가 러시아·우크라이나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하다. 무엇보다 벨린스키가 '수사학파' 또는 '낭만주의 학파'와는 대조적으로 앞으로 러시아 소설의 방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
"페테르부르크에는 네프스끼 거리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 이 거리는 이 도시를 위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의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거리가 왜 훌륭하지 않겠는가! 내가 아는 바로 이곳 사람들은 가난한 자든 고위직 관리든 누구나 네프스끼 거리를 다른 어떤 좋은 것과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니콜라이 고골리의 '네프스끼 거리'란 소설의 첫 문단이다. 어느 도시나 도시의 상징은 있기 마련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상징 거리는 네프스키 거리다. 이 거리는 모스크바역에서 시작되어 도시를 관통하고 네바강까지 이어진다. 환상과 현실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방식으로 부조리한 세계를 조명하고 있는 이 작품은 지극히 현대적인 상상력과 신랄한 현실 풍자 정신으로, 고골리를 러시아 근대 문학의 근원지에 자리하게 했다.
이 작품이 지닌 환상은 현실을 풍자하고 인간의 내재한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는 동시에 웃음과 공포, 인간에 대한 연민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럼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고달픈 인간의 현실까지도 적나라하게 마주 보게 한다. 작품에서 네프스끼 거리는 영혼이 없고 실체가 없는 거리로 묘사된다.
작품 속 사람들은 육체적인 특성이나 외모만 집착하는 모습이다. 작가는 이곳을 서구주의자들에 의해 세워진 인공도시라고 한탄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도시의 화려함에 숨겨진 추악함을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네프스키 거리가 있음에 씁쓸함을 안겨준다.
'외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수아즈 사강 중편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 (0) | 2022.08.16 |
---|---|
하인리히 뵐 장편소설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Wo warst du Adam?)』 (0) | 2021.04.08 |
하인리히 뵐 장편소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Und sagte kein einziges Wort)』 (0) | 2021.03.25 |
다니자키 준이치로 장편소설 『세설(細雪)』 (0) | 2021.02.25 |
고골리 장편소설 『광인일기(Zapiski sumasshedshego)』 (0) | 2021.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