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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도화녀비형랑(桃花女鼻荊郞) 설화

by 언덕에서 2019. 1. 8.

 

 

도화녀비형랑(桃花女鼻荊郞) 설화

 

사진 출처 : 월간조선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죽은 전왕(前王) 진지왕과 동침한 도화녀(桃花女)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비형랑(鼻荊郞)에 관한 설화로 이물교구 설화 중 사자교혼(死者交婚)에 속하는 설화이다. 구전되어 오기보다는 문헌에 기록되어 전승되었다. <삼국유사> 1 기이편도화녀비형랑조에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일을 두고 "성스러운 임금의 혼이 아들을 낳았으니 온갖 귀신들은 비형랑의 집으로 날아가고 여기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라"라는 내용의 글을 지었는데, 신라에서는 이 글을 걸어놓고 귀신을 쫓는 풍속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신라의 지배층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불교를 최고이념으로 삼고, 동시에 중국의 영향을 받아 유교에 입각한 제도와 관습을 택했다. 그러나 이 설화에는 당시 사회에 무속의 전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음이 나타난다왕이 도깨비를 등용하고 자식이 없는 신하의 후계자로 삼게 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또 후대의 처용보다는 더 소극적이지만, 잡귀를 물리치는 존재로 여겨진 점에서 비형랑은 처용과 비슷한 성격의 인물이다. 이 설화는 고전소설 금방울전>에서 집약적으로 전승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신라 제25대 진지왕이 왕위에서 추방되기 전, 유부녀인 미녀 도화녀을 범하려다가 그녀의 지조를 꺾지 못하고 석방하였다. 바로 그해에 왕은 왕위에서 추방되고 죽었다. 그리고 2년 뒤 도화녀의 남편도 죽었다.

 10여 일 뒤에 죽은 왕이 나타나 도화녀 방으로 들어가 전날 도화녀가 왕의 요구를 거절할 때의 꼬투리(남편이 없으면 왕의 요구를 허락하겠다.)를 내세워 7일 동안 머물고 갔는데, 달이 차서 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름을 비형이라 하였는데 진평왕이 그 신기함을 듣고 궁중에 데려다 길렀다. 비형의 나이 15세에 집사라는 벼슬을 주었는데, 저녁마다 궁궐 밖으로 나가 도깨비들을 모아 놓고 놀았다.

 진평왕은 그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도깨비를 부려 공사하게 하여 귀교(鬼橋)도 하룻밤 사이에 놓았으며, 길달이라는 도깨비를 끌어 국정을 돕게도 하였다. 그러나 길달문까지 세우고 여우로 둔갑하여 달아난 길달을 비형랑이 죽여 버렸다.

  그 뒤 도깨비들은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 달아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비형랑을 두고 지은 글을 써 붙여 잡귀를 물리치게 되었다.

 

 

 

 

 이야기는 신라 제25대 진지왕과 관련된 이야기로 <삼국유사> 1에 실려 전승된다. <동국여지승람> '경주부'에서 신라 경주의 사람들이 비형 이후 두두리(豆豆里) 섬기기를 심히 성히 했다.”라고 말했는데, 비형랑은 도깨비로 판단된다. 경주의 풍속에서는 지금도 성제의 혼이 아들을 낳은 비형랑의 집이라는 가사를 문에 붙여서 귀신을 쫓는데, 이것이 동경두두리의 시초라고 전한다. <도화녀비형랑>은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도깨비 '본풀이'라고 할 수 있다.

 국문학자 장덕순에 의하여 시도된 시애설화(屍愛說話)1의 범주 중에서 두 번째가 이 도화녀비형랑 설화류를 지칭하고 있다. , 이미 죽은 연인의 혼백이 나타나서 산 사람과 동거 또는 동침하는 설화라는 것이 바로 이 설화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이 설화의 응집체라고 생각되는 <금방울전>에 등장하는 삼낭이라는 남편도 죽어 그 혼령이 수십 년 만에 전처 막시를 찾아와 자주 내왕하여 딸 방울을 낳는다.

 

♣ 

 

 이 설화의 서사적 틀은 비형랑의 존재론 근거와 그에 따른 신성 능력의 현시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죽은 왕의 혼령과 살아 있는 어머니의 결합은 저승과 이승의 결합이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비형랑은 양쪽 공간의 경계 표지이자 매개자이다. 비형랑이 이승에서 맡은 과업은 귀신들을 통제하는 일이었다. 특히 두두리도깨비들을 부려 다리를 놓고, 성문을 세우는 등 건축신으로서의 직능을 보여 준 점은 구술전승에서 도깨비가 하는 대표적인 행위와 일치한다.   

 이 도화녀비형랑 설화의 경우 이미 죽은 왕에게는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까지도 이물로서 남녀 간 육체적 관계를 맺음의 대상이 된다이러한 이물교구설화2일수록 거기서 태어나는 제2세는 으레 비상한 인간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특정한 뛰어난 인물의 전기를 서술할 때에는 거의 이러한 경로를 따라 태어나 파란곡절을 극복하고 대성하는 생애로 끝맺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설화는 밤에 오는 손님을 다룬 야래자()설화와 이물교혼설화3, 죽은 이와의 사랑을 다루는 시애설화와 상호 관련이 있다. 그리고 도깨비는 한국인의 무의식적 심상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존재이다. 도깨비의 본풀이라고 할 수 있는 비형랑 이야기는 도깨비의 존재론 근거를 보여 준다.

 

 

 

 

 

 

 

 

 

  1. 이 계열의 설화는 동·서양을 통하여, 또한 고금에 걸쳐 널리 전승되고 있기도 하다. 이 설화의 문헌적 근거로서, 불경을 비롯하여 중국의 『수신기(搜神記)』·『법원주림(法苑珠林)』·『후한서』의 적미(赤眉)이야기, 일본의 『천심일본직이(千尋日本織二)』 등의 외국 사료를 들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수이전(殊異傳)』의 「수삽석남(首揷石枏)」·「쌍녀분(雙女墳)」·「선녀홍대(仙女紅袋)」, 그리고 『삼국유사』의 「도화녀비형랑(桃花女鼻荊郎)」에서 그 편모를 찾을 수 있다. 이 설화의 유형을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더라도 죽은 사람의 혼령과 우연히 만나 함께 노니는 설화, ② 사랑하던 사람의 혼령이 살아 있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설화, ③ 정상적이 아닌 인간들이 무덤 속의 시신을 꺼내어 농락하는 설화. ①은 우리의 『수이전』 속의 「선녀홍대」 설화가, ②는 『삼국유사』의 「도화녀비형랑」 이야기, ③은 대체로 외설 이야기로써 전승되고 있다. 이 밖에 일본에서는 생전에 지극히 사랑하였으나, 이미 유명을 달리한 사람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애무하는 예화도 전한다. 시애설화는 대체로 엽기적인 소재로 다루어지면서 청자(聽者)들의 흥미를 돋우는 데 큰 구실을 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특히 ②와 같은 경우는 도굴(盜堀)과도 맥락을 함께 하면서 부연된 설화가 아닌가도 여겨진다. 그런데 이 설화는 동서고금에 걸쳐 넓은 분포를 보이고 있음은 물론, 이 전기성(傳奇性)의 영향으로 작품화되어 왔다. 시애설화와 소설의 관계를 매우 깊게 파헤쳐, 시애설화가 근대에 와서도 소설화되어 있음을 논증한 연구 성과도 이루어졌다. 결국 시애설화는 시신(屍身)의 정령을 인식한다는 관념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할 때, 이 설화의 작품화는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질 것이란 점은 명백하다고 본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애설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본문으로]
  2. 사람이 사람 아닌 동물이나 식물과 교구한다는 내용의 설화. ‘이류교혼담(異類交婚譚)’이라고도 한다. 이 술어는 최상수(崔常壽)가 한국 전설을 분류하면서 전설분류항으로 설정한 것인데, 이물의 성격에 따라 동물교구설화와 식물교구설화로 나눌 수 있고, 이물이 남성의 구실을 하는 경우와 여성의 구실을 하는 경우로도 나누어진다. [본문으로]
  3. 귀신과 사람이 혼인해 아이를 낳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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