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이다!'라는 말, 무슨 의미일까?
근래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대박이다!”라는 표현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개업의 축하인사로, 청소년들이 ‘굉장하다’ ‘놀랍다’는 의미로 많이 써왔지만 요즘 와서 빈도가 더 많아지는 듯하다. 티비를 보노라면 젊은 세대들이 사용하는 가장 짧고 담백한 감탄사가 “대박!”이다.
흔히들 말하는 ‘먹방’프로를 본 적이 있다. 걸 그룹 출신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음식점에서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자말자 가장 먼저 터트린 일성(一聲) 이 “아! 대박!”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대박!’이라는 표현이 좋은 곳에만 쓰이는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거나, 어떤 일이 지나치게 심할 경우 등 부정적 상황에서도 쓰이는 것을 보았다. 지하철에서 옆에 앉은 대학생들의 다음과 같은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야 알아? 요번 시험에서 오류가 떠서 시험을 망쳤다. 와! 대박, 아놔…….”
이 요상한 '대박'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분명 좋은 뜻으로 사용하는 것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해서 이 단어가 만들어졌을까?
‘대박’이란 말은 주로 '대박이 터지다'의 형식으로 쓰여 '흥행이 크게 성공하다','큰 돈을 벌다'는 뜻을 나타낸다. 도박판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大博이란 한자에서 왔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흥부가 큰 박을 터뜨려 횡재를 하는 장면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 말의 유래가 정확히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없는 듯하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하여 이 표현의 대중화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나게 했다. 이어진 기사에서 대통령이 표현한 ‘대박’의 영역(英譯)이 동시통역사가 한 'breakthrouth'로는 무리고 ‘jackpot'가 맞는다는 주장과 종국에는 'bonanza'가 맞는다는 결론으로 흐르는 듯했다. 대박이란 말을 외국어(英語)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 그 어원은 무엇인가에서 혼란이 온 것이다. 급기야 청와대가 대박의 영문 표기 문제와 관련, 입장을 밝혔다. 노다지 또는 아주 수지맞는 일을 의미하는 ‘보난자(bonanza)’를 우선적으로 쓰되 거액의 상금을 뜻하는 ‘잭팟(jackpot)’도 함께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보난자는 스페인어로 번영이란 뜻도 있어 부정적인 의미가 적다. 반면, 도박이나 사행성 용어로 많이 쓰이는 잭팟은 일확천금처럼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이로써 영역(英譯) 논란은 일단락됐다.
정확한 개념 정의를 위해 국어사전 중 가장 권위 있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았다.
대박 01(大-)[대ː-]
〔대박만[-방-]〕
「명사」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대박 02(大舶)[대ː-]〔대박만[대ː방-]〕
「명사」
「1」바다에서 쓰는 큰 배. ≒대선02(大船)「1」.
「2」큰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런데 이 ‘대박’, 어디서 온 것일까. 몇 가지 설이 있을 뿐이다.
1. 노름 용어 ‘박’설이다.
‘박’은 노름판에서 이겨 여러 번 패를 잡는 일, 또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이 ‘박’에 ‘대(大)’가 붙었다는 것이다. 많이 따는 것을 ‘한 박 잡다’라고 한다. 개화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십인계(十人稧)’라는 도박이 그 무대라고 전한다. 이 판에서는 판돈을 ‘박’이라고 하는데, 크게 한 판을 따게 되면 ‘한박 잡았다’고 했다. 이때의 ‘한-’은 하나, 둘…같은 수사(數詞)가 아니라, 위대하다·크다는 뜻의 접두어일 것이다. 한글· 한길의 ‘한-’과 같다. 그러니 ‘한박 = 대박’이라는 것이다.
2. 흥부에게 횡재를 안겨준 ‘큰 박’설이다.
‘대박 터지다’ ‘대박 터뜨리다’라는 표현이 이 설을 뒷받침한다. 박은 인도· 아프리카가 원산지이지만, 고대 중국에도 ‘대(大)박’기록이 있다. 박은 순수 우리나라 말로서 조롱박·쪽박·발랑박 등 많지만 박 앞에 수식어로 대박이라 하는 것은 ‘크다’의 의미로 '대'한민국, '대'통령, '대'형버스, 등으로 쓸 수 있다. 따라서 큰 박, 작은 박, 중간 박 정도로 대별할 수 있으며 흥부전에 나오는 대박은 '큰 박'이라고 볼 수 있다. 대칭되는 말로써 쪽박·쫄랑박 등의 비어로도 사용 할 수가 있을 듯하다. ‘장자’ 소요유편. 위(魏)나라 혜왕 때의 재상이자 장자의 친구인 혜시(惠施)가 장자에게 한 말 속에 나온다. “왕이 큰 박씨 하나를 주기에 심었더니 다섯 섬들이 박이 열렸는데, 너무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어 깨뜨려 버렸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조선시대의 판소리 ‘흥부가’에 나오는 박은 이보다 더 커 ‘집채만’하다는 표현이 있다.
3.‘큰 배(大舶)’설이다.
‘큰 배’로는 당연히 ‘큰돈’을 벌 수 있다. 그동안 ‘대박(大舶)’ 유래설이 대세였다. 대형 선박이 입항하면 어획물이나 선적 물량이 어마어마하니 대박 아니냐는 주장이다. 며칠 전 송호근 교수의 칼럼을 읽으면서 ‘대박내선’이라는 표현을 접했다. ‘큰 배가 조선에 올 것이다(大舶來鮮)’. 1780년대 조선인들 사이에는 이런 소문이 널리 퍼졌다. 노론의 독재정치에 질병과 기근에 시달렸던 민중들에게 천주교가 이상향의 꿈을 심어주던 때였다.
이처럼 민간어원설은 그럴 듯하나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대어 자기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한 면이 많아 신뢰도가 높지 않은 듯하다. 많이 쓰는 용어인‘대박’의 어원에 대해 공식연구기관인 국립국어원이나 권위있는 국어학자들의 학술적인 발표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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