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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괴테 장편소설『친화력(親和力, Die Wahlverwandtschaften)』

by 언덕에서 2016. 10. 12.

 

 

괴테 장편소설『친화력(親和力, Die Wahlverwandtschaften)

 

 

  

 

 

독일 대문호 괴테(Goethe,Johann Wolfgang von.1749∼1832)의 장편소설로 1809년 발표되었다. 어떤 종류의 원소(元素)는 서로 쉽게 결합되고, 어떤 종류의 원소는 서로 반발한다는 화학상의 친화력의 법칙을 인간 사이에서 서로 좋아하고 미워하는 관계에 적용한 작품으로, 처음에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 삽입할 예정이었는데, 분량이 너무 방대하여 독립된 작품으로 발표되었다.

 괴테 자신이 <진기한 제목>이라고 시인하고 있듯 이 소설의 제목 『친화력』은 화학 용어이다. 즉, 서로 다른 원자들끼리 원래의 결합을 버리고 새로이 결합하여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려는 성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괴테는 이러한 자연 법칙을 인간관계에 접목하여 인간들 사이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다. 네 남녀 사이의 분리와 결합 과정이 친화력이라는 화학적 현상과 유추 관계에 의해 서술되고 있다. 소재와 이야기 방식, 도덕성의 측면에서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사건의 전개보다 인물의 심리를 냉엄하게 묘사한 점에서 심리소설의 선구적 작품으로 꼽힌다. 작품 중 인물인 오틸리에는 괴테가 60살 때 사랑한 소녀 헤르츨리프를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 
 

독일 문호 괴테( Goethe,Johann Wolfgang von.1749&sim;1832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지방 귀족 에두아르트와 샬로테는 한때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결혼은 저마다 다른 사람과 했다. 그 뒤 모두 배우자를 잃은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해서라기보다도 지난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재혼한다. 그들의 집에 남편 친구인 대위와, 아내 조카인 오틸리에가 들어온다.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 그리고 샬로테와 대위 사이에 본성인 ‘친화력’이 발동하자, 지금까지 행복하게 보였던 결혼생활에 위기가 닥친다.

 대위와 오틸리에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에두아르트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 균형을 무너뜨리고 만다. 한쪽에서는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 다른 한쪽에서는 샬로테와 대위 사이에 ‘공감 반응’이 일어난다. 이 새로운 정열은 은밀히 숨죽인 채 있었고, 어두운 모습을 숨긴 그들의 사중주는 겉으로는 밝고 온화하게 생활 속에 녹아든다. 그러나 그 정열이 고개를 드는 순간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마음속으로 저마다 다른 상대를 생각하며 사랑을 나누는 부부. 행위가 아닌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간통. 그 결과 부모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부도덕한 죄가 덧씌워진 채 뜻밖의 외모를 지닌 아이가 태어난다.
 대위도 떠나가고,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어긋난 운명은 부부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가고, 샬로테는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의 강한 의지를 의식한 채 남편과 오틸리에의 결합을 허락한다. 스스로 선택한 친화적인 한 쌍이 드디어 결합하는 것일까. 그러나 오틸리에는 아이의 죽음에 참회하고자 사랑을 포기하고 내면 깊이 파고든 채 결국 죽음을 맞는다. 에두아르트 역시 그녀를 따르고, 샬로테만이 점점 희박해져 가는 공기 속에 홀로 남는다. 

 

 

독일 연극 <친화력>의 한 장면

 

  

 소설 『친화력』은 괴테가 거장다운 면모, 특히 '사랑의 대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대표작으로, 토마스 만이 “독일인들의 최고의 소설”이라 일컬은 작품이다. 그리고 전후의 한 비평가는 “괴테 소설 중 가장 파악하기 어렵고 의미가 많은 책”이라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괴테가 25세에<젊은 베르터의 슬픔>에서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사랑을 질풍노도적 감정으로 서술했다면, 60세에 쓴 『친화력』에서는 노년기에 접어든 그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접점에서, 한 시대를 정리하고 새 시대를 여는 시점에서 자신이 체험한 사건들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사랑에 대해서도 더 깊은 통찰을 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이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그 속에 괴테 자신의 경험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바이마르를 떠나 예나에 체류하게 된 괴테는 18세의 민나 헤르츨리프를 만나, 갑작스런 애정을 품게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가 60세. 사실 그는 그녀를 10세 정도부터 알고 있었는데, 몰라볼 정도로 성숙하고 아름다워진 모습을 대하고 새삼스러이 정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 것이다. 스스로도 위험하다고 느낄 정도의 이 위험한 열정에 놀란 그는 되도록 그녀의 집을 멀리하였으며 곧 그곳을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그때의 경험이『친화력』에 녹아들어 있다.  

 

 

 『친화력』은 자유로운 연애와 이혼이라는 낭만주의적 요소를 기본 주제로 한다. 그러나 '친화력'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자연 법칙과 인위적인 도덕 법칙, 자유로운 사랑을 향한 열정과 자제할 줄 아는 분별력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등장인물을 방황케 함으로써 그 조화를 모색한다. 그러면서도 인간 상호간의 마음의 깊이를 투영해 주는 특유의 시적인 언어와 엄격한 작품 형식을 고수하고 있다. 한마디로 『친화력』은 낭만주의를 넘어서는 노년기 괴테의 대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가 도덕적인 측면에서 세간의 비난을 살 만한 애정에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괴테는, 남녀 사이에는 불가항력적인 친화력이 있어 격렬한 애정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는, 그 자신의 실제적인 경험을 드러내고 있다. 그 애정의 끝이 죽음인 것으로 이 작품을 끝맺으면서도 괴테 자신은 도덕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단지 맹목적인 격정을 다스리고 정화해서 행복한 삶으로 향해야 한다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내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