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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오에 겐자부로 장편소설 『개인적 체험(個人的な体験)』

by 언덕에서 2011. 7. 29.

 

오에 겐자부로 장편소설 『개인적 체험(個人的な体験)』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1935  )의 장편소설로 장애아와 관련된 고뇌와 방황, 회한과 허무를 그린 작품으로 1964년에 발표하였다. 이 작품으로 같은 해 [신조사] 문학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개인적 체험이라는 제목 자체에서도 보듯이 작가가 직접 체험한 내용을 소재로 하여 썼다. 이 소설에서는 태어나자마자 '뇌 헤르니아'라는 병을 얻은 아들과 아버지 버드의 고민과 좌절 등이 묘사되었다. 장애아들을 가진 오에 겐자부로의 심경으로, 그는 1960년에 결혼했는데 1963년에 뇌가 비정상인 아들 히카리가 태어났다. 이 소설은 현재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바로 이 작가 자신의 장남 히카리를 모델로 했다. 겐자부로는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버드는 영문과 대학원을 다니다 그만둔 학원 강사로 20대 후반의 젊은 지식인이다. 나이는 20대나 육체적으로는 40대로, 청춘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그는 일본을 벗어나 아프리카행을 꿈꾼다. 그러던 그가 뇌성마비 아들을 두게 되자 절망감에 방황한다.

 결혼하기 전 사귀던 여자 히미코를 찾아가 미친 듯이 섹스를 하기도 하고 술을 먹고 강의실에 들어갔다가 구토를 하여 경멸을 받기도 한다. 도피처를 찾아보자는 심산이었다. 아이를 돌보지 않으면 죽으리라는 생각에 유기하고 아프리카로 도망갈 생각도 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장애아를 인정하기로 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큰 아들이 정신지체아로 태어난 것을 계기로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아들이 뇌성마비였음에도 그는 그런 현실에 굴하지 않고 깊은 사랑과 정성으로 아이를 키웠다고 한다. 그 덕에 아이는 CD29만 장이나 판 유명한 작곡가로 성장했다. 자신의 그런 체험은 소재가 되어 이 소설을 집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은 청춘이 끝나고 여러 가지 인생의 책임감에 눈 떠가는 청년의 모습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와 장애인 아들과의 관계를 축으로 하는 작품으로, 오에 겐자부로는 숙명과도 같은 자신의 이야기를 사소설적인 형식에 가깝게 전개하였다.

 불치의 병 뇌헤르니아를 앓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한 아버지가 아이를 죽게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수술을 해서 생명만은 건질 것인가,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할 아이를 키워야 할 것인가 하는 선택 앞에서 여러 가지로 벗어나려고 시도하다가 마침내 아이를 살리기로 한다는 줄거리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평생 장애인에 관해 관심을 보이고 그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썼다. <하늘의 괴물 아구이> <타인의 다리> <새로운 사람이여 깨어라> <조용한 생활> 등은 작가의 장애아 체험을 소재로 장애아와 정상인과의 관계를 통해 현대인의 심리를 잘 드러내 주는 작품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인 소설이기도 한 개인적 체험은 자식이 기형아로 태어난 한 사내의 실존적 고뇌를 다루었다. 그러나 그 고뇌의 핵심은 그 아이를 죽인다, 혹은 살린다는 문제보다 그 죽임과 살림의 선택에 대해 도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 초점이 가 있다.

 이 도피의 문제에 서서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것은 과거의 연인이다. 남편이 죽고 이제는 다시 홀로 사는 그녀는 '개인적 체험'이라는 것을 통해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실존이란 것 자체의 무의미를 주장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그녀의 개인적 체험이란 자기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한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인식으로, 주인공은 그녀와 만남으로서 자신의 기형적인 자식에 대한 실존적 태도의 갈등을 극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만일 그가 그녀와 함께 지금의 생활을 버리고 배를 타고 아프리카로 떠나버린다면 그것은 완전한 의미의 실존에 대한 부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와 만남 이후 주인공은 기형의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부담에 대해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 아이를 죽이려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아이에 대한 안락사 의뢰를 성립시키기 마지막 한발 앞서 그는 마침내 깨닫는 바가 있어 울부짖는 그녀를 거절하고 병원으로 돌아간다.

 그가 깨달은 것은 부성이라던가 그런 가족적인 가치는 아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 체험'은 실존의 명백함과 그 명백함을 지우고자 하는 가련한 우리 모두의 나약함을 선명하게 대조시킨다. 그러나 그 냉정한 대조의 끝에 기형아이던 주인공의 아들이 회복의 진전을 보이고, 어린아이 같은 주인공은 진정한 어른으로서 성장하고, 그로서 무너지던 가정이 회복되어 감을 그리는 것은 오에 겐자부로가 그의 글이 그리는 만큼 스스로 완전히 냉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투영해 놓은 듯한 이야기의 결말, 주인공은 자신의 선택이 지워지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음에서 끝난다. 그것은 한 가정의 가장이자 가련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일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