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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하인리히 뵐 장편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Die verlorne Ehre der Katharina Blum)』

by 언덕에서 2011. 7. 8.

 

하인리히 뵐 장편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Die verlorne Ehre der Katharina Blum)』

 

 

독일 소설가 하인리히 뵐(Heinrich Boll, Heinrich Theodor Boll, 1917 ~ 1985)의 장편소설로 1974년 발표되었다. 장편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은 발표한 지 6주 만에 15만 부가 팔리고 뉴저먼시네마의 기수 폴커 슐렌도르프에 의해 영화화되어 크게 흥행했던 소설로, 현재까지도 언론의 폐해를 다룰 때 언제나 인용되는 고전이다.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한 일간지 기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범은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27세의 평범한 여인. 그녀는 제 발로 경찰을 찾아와 자신이 그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자백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가정관리사로 일하면서도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늘 성실하고 진실한 태도로 주위의 호감을 사던 총명한 여인 카타리나가, 도대체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이 살인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화자는, 2월 20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닷새간의 그녀의 행적을 재구성하여 이를 보고한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던 카타리나는 하룻밤 사랑을 나눈 운명적인 남자가 경찰에 쫓기고 있음을 알고 그에게 도주로를 알려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경찰에 연행, 심문을 받게 되고, 그 소식은 하이에나처럼 특종을 찾아 헤매는 일간지 기자 퇴트게스의 시야에 포착된다. 끈질긴 특종 사냥꾼 퇴트게스의 사냥감이 된 그녀는 순식간에 “살인범의 정부”가 되고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되고 만다. 뵐은 이 작품에서, 대중의 저속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언론이 어떻게 한 개인의 명예와 인생을 파괴해 가는가를 처절하게 보여 주고 있다. 하인리히 뵐을 흔히 ‘폐허의 문학’의 지도자적 작가라고 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젊은 작가들이 전후의 어두운 생활과 국면만을 묘사하는 것을 비난 섞인 ‘폐허의 문학’이라고 부르자, 뵐은 이에 반발, “우리들 눈에 비치는 현실이 폐허라고 한다면 그것을 냉철히 응시하고 묘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했다.

 

독일 소설가 하인리히 뵐( Heinrich Boll ,  Heinrich Theodor Boll, 1917 ~ 1985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74년 2월 하순경에 라인 지방의 어느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27세의 카타리나 블룸이 아는 사람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려고 집을 나선 것은 수요일 저녁 7시쯤이었다. 그로부터 4일이 지난 일요일 같은 시각에 카타리나는 경찰서로 가 그날 오후 그녀의 집에서 신문 기자를 죽였다고 자백했다. 그 후 7시간 정도가 지났지만 카타리나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후회하는 심정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카타리나는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한번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여 이제 겨우 공인 가정관리사로 자리잡게 된 당찬 아가씨였다. 그런데 그녀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카타리나는 파티에서 만난 한 청년에게 반해 그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그는 은행 강도 용의자로 경찰의 미행을 받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튿날 아침, 경찰은 그녀의 집을 수색했지만 그 남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자 카타리나를 연행해 갔다. 그런데 이 사건의 냄새를 맡은 신문 기자들이 일대의 스캔들로 보도해 버렸다. 이로 인해 그녀의 사생활이 폭로되고, 그들의 집요한 취재로 병상에 누워 있던 어머니는 숨을 거두었다. 게다가 더욱 기막힌 일은 신문들이 그녀가 위험한 사상을 가진 지하단체의 정부(情婦)라고 허위 보도를 했던 것이다. 대중의 구미를 맞추기 위한 그런 오보(誤報)는 그녀를 파멸로 이끌었다. 결국 궁지에 몰린 카타리나는 그녀를 취재하러 온 신문 기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그것만이 약자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출간 당시 즉시 세간의 주목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 영화계의 거장 폴커 슐렌도르프에 의해 영화화되고, 현재까지도 언론의 폐해를 다룰 때 언제나 인용되는 고전이다.

 이 작품이 독자들의 주목을 끈 까닭은, 역시 동시대 현실의 담론과 밀접하게 얽혀 있는 뵐 문학 세계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패전 독일이 민주 · 복지국가로 변모하는 1970년대에도 뵐의 작가적 관심은 여전히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굴욕 및 모욕을 당한 사람들에게로 향해 있었고 사회의 억압과 인권 침해에 대해 그는 깨어 있는 양심의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작가적 관심에서 1970년대 독일 사회 전체를 뜨겁게 달구었던 테러리즘에 대한 논쟁과 언론의 폭력에 대해서도 뵐은 함구하지 않았다.

 그 어느 권력보다도 강력한 파급력을 지닌 구조화된 폭력, 언론의 폭력을 문제 삼은 하인리히 뵐의 이 작품은 당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문제작이었을 뿐 아니라, 현재에도 시청률과 판매 부수에 죽고 사는 상업주의 언론의 실상을 폭로하는 데 매우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 작품은 개인의 사생활을 하찮게 여기고 발행 부수만을 늘리려는 신문에 의해 하층민이 붕괴해 가는 과정을 실감있고 진실되게 그리고 있다.

 카타리나는 비록 하층 계급 출신이지만,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으며, 강인하고 총명한 자태를 잃지 않는 여인이다. 그녀는 사회의 선입견이나 편견에도 물들지 않아 순수하고 소박했다. 그러나 그녀는 대중의 비속(卑俗)한 호기심에 불을 당기는 데 급급한 ‘신문’에 의해 궁지에 몰려 살인까지 범하고 말았다.

 이 작품에서의 또다른 주인공인 ‘신문’은 서부독일 최대의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선동적인 반동신문 <빌트>임을 작가는 부인하지 않았다. 진심이 담긴 사랑의 행위와 동물적인 욕구를 동일시하려는 세상에 대해 양자간의 뚜렷한 구별을 원했던 카타리나, 그녀는 음탕한 의미로,  “한 방 쏘자” 라고 달라붙는 신문 기자에게,  “좋아요” 라고 대답하고는 그대로 총을 발사한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라면 무고한 타인을 얼마든지 짓밟아도 된다는 사고방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변이며 선량한 소수를 보호하려는 작가의 양심을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뵐은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