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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어르신’과 ‘어른’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2. 9. 12.

‘어르신’과 ‘어른’의 어원

 

영화 <아무르>, 2012년 제작

 

 

텔레비전을 보면 ‘6시 내 고향’ 등 여러 프로에서 농,어촌마을 소개를 하는데 리포터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대화 장면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에게 칭한 '어르신'이라는 표현이 뭔가 어울리지 않은 느낌 때문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 어르신(어르신네) : 명사.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어른보다 높여 이르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대중매체에서는 왜 여자에게도 ‘어르신’이라는 표현을 쓸까?

  한글학회(02-738-2238)에 직접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았다.

 답변은 이러했다.

  "남자에게 쓰는 말이 분명히 맞다. 남녀평등의 시류에 따라 의미가 확충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구체적인 부분은 '국립국어원'에 문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02-2669-9775)에 문의를 해보았으나 답변은 비슷했다.

  "분명히 남자에게 쓰는 말이 맞다. 그러나 여성 할머니에 대한 적절한 명칭이 없어서 의미가 확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어는 항상 변화한다.

 비슷한 예로 요즘 젊은이들이 잘 쓰는 ‘완전’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야!, 이거 완전 좋다.”

 완전이란 말은 명사로서 “ (주로 다른 명사 앞에 쓰여)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위의 사용 예에서 보듯이 부사로 사용되고 있다. ‘매우’ 도는 ‘대단히’ 정도의 의미로 변화 중인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어른’의 어원은 무엇일까?

 “어른한테 그 말버릇이 뭐냐?”

 “그 어른께서는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박갑천의 어원수필에 의하면 어른은 다 성장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지위나 항렬이 높은 사람에 대해서도 쓰인다고 했다. 물론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도 쓰인다. 그러나 본래의 시작은 장가들거나 시집을 간 사람이었다니 놀랍다. 결혼을 해서 한 집안을 이룬 사람의 일컬음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른한테 말버릇이 뭐냐'고 하여 사뭇 점잖기만 한 ‘어른’도 그 줄기를 따라 올라가 보노라면, 옛날 양반들의 ‘점잔’이라는 뜻에서는 조금 꺼림칙한 어원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부터는 박갑천 선생의 「어원수필」에 게재된 내용을 인용해 보겠다.

 


 

 

 

‘어른’의 어원

 

 

 

 “어른한테 그 말버릇이 뭐냐?”

 “그 어른께서는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어른은 다 성장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지위나 항렬이 높은 사람에 대해서도 쓰인다. 물론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도 쓰인다. 그러나 본디의 시작은 장가들거나 시집을 간 사람이었다고 할 것이다. 결혼을 해서 한 집안을 이룬 사람의 일컬음이 시작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른한테 말버릇이 뭐냐고 하여 사뭇 점잖기만 한 ‘어른’도 그 줄기를 따라 올라가 보노라면, 옛날 양반들의 ‘점잔’이라는 뜻에서는 조금 꺼림칙한 여운(餘韻)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세어에서 ‘얼다’라는 말은 교합(交合)하다, 성교(性交)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고, ‘어르다’는 ‘혼인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얼음이 언다는 ‘얼다’도 굳게 합해 있다는 뜻에서 살핀다면 본줄기는 같았던 것이라고 해 볼 수도 있다.

 ‘어른’의 그때 말은 ‘얼운’ 또는 ‘어룬’이었다. ‘얼다’의 ‘얼’에 ‘운’이라는 발가지(접미어)가 붙었던 형태였다고 생각될 수도 있고, 그대로 ‘어루다’나 ‘어르다’가 주저앉아 ‘얼운’ㆍ‘어른’이라는 말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어른’이라는 것은 ‘언(얼은) 사람’이다. 그것이 결국 어른이라는 것이다. ‘얼우다’ㆍ‘얼이다’ㆍ‘얼유다’ㆍ‘어루다’ 같은 중세어가 다 시집보내고 장가보내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었거니와 지금도 아주 높여서 쓰고 있는 말,

 “자네 어르신네께서는 지금 뭘 하고 계시는가?”의 ‘어르신네’도 ‘얼우신’ 또는 ‘어루신’이어서 어른이라는 말은 결국 혼인(婚姻), 즉 남녀의 교합(交合)을 전제한 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스울 것도 없는 것이 그럼으로써 곧 ‘어른’이라는 인정을 받았던 것일 테니까.

 그런데 ‘어루만지다’라는 말도 ‘얼다’ㆍ‘어르다’라는 데서 출발된 말이라고 생각해 볼 수가 있는 일이다.

 “얼운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던 황진이(黃眞伊)의 생각이 동짓달이라는 말이 들어서 추웠기 째문의 ‘얼운님’이기도 했으려니와 여기서 말하는 ‘얼운님’ 생각이 은근히 안 풍긴다고 할 수 없는 일 아니가.

 어른이 되면 점잖아져야 했던 우리 할아버지들인 것인데, 하여간 그 양반들, 메타포는 없었다 해도 솔직한 생각의 표현 그것만은 멋있었던 일이라고 해 두자.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참고 서적 : 1. 민중서관 <한글사전>(2005) -

            2.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